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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5일 (일) 23:41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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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독일어: Berlin IPA)은 독일의 수도이자 면적과 인구 면에서 최대 도시이다. 도시 경계 내 인구는 370만 명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16개 주 중 하나로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인 포츠담(Potsdam)과 인접해 있다. 인구 약 450만 명의 베를린 도시권은 독일에서 인구가 많은 도시권이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대도시권(Berlin/Brandenburg Metropolitan Region)은 약 62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라인-루르 지역(Rhine-Ruhr metropolitan region) 다음으로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권이다.[1]
목차
개요[편집]
베를린은 서부 슈판다우구에 있는 엘베강의 지류인 하펠강으로 흐르는 슈프레강 강둑에 걸쳐 있다. 베를린의 주요 지형적 특징으로는 서부, 남동부 자치구에 위치한 슈프레강, 하펠강과 다메강에 의해 형성된 많은 호수가 있으며, 그중 가장 큰 호수는 뮈겔제호이다. 베를린은 유럽 대평원에 위치하여 온화한 계절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도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은 숲, 공원, 정원, 강, 운하와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베를린은 중부 독일어 지역에 있으며, 베를린 방언은 루사티아 방언의 변형이다. 베를린은 13세기에 처음 문서로 기록되었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무역로가 교차하면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1417-1701), 프로이센 왕국(1701-1918), 독일 제국(1871-1918),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 나치 독일(1933-1945)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베를린은 계몽주의, 신고전주의, 자유주의 혁명의 과학적, 예술적, 철학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륀더차이트 시대의 산업화로 인한 경제 호황으로, 베를린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1920년대 격동의 베를린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다.[2][3]
베를린은 제2차 세계 대전과 승전국의 점령 이후, 황폐해진 베를린은 분열되었다. 서베를린은 베를린 장벽(1961년 8월부터 1989년 11월까지)과 동독 영토로 둘러싸인 서독의 사실상 월경지가 되었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로 선포되었고, 본은 서독의 수도가 되었다. 1990년 독일의 재통일 이후, 베를린은 다시 독일 전체의 수도가 되었다. 베를린은 문화, 정치, 매체와 과학의 세계적인 도시이다. 베를린의 경제는 첨단 기술 기업과 서비스 분야를 기반으로 하며, 다양한 범위의 창조 산업, 스타트업, 연구 시설, 미디어 기업과 컨벤션 장소를 포괄한다. 베를린은 항공과 철도 교통의 대륙 허브 역할을 하며 매우 복잡한 대중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또한, 베를린 메트로폴리스는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베를린의 여러 주요한 산업으로는 IT, 의료, 의공학, 생명공학, 자동차, 건설, 전자, 사회적 경제와 청정 기술 등이 있다.
베를린에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베를린 자유대학교, 베를린 예술대학교, ESMT Berlin, 헤르티 스쿨, 바드 칼리지 베를린과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들이 있다. 베를린 동물원은 유럽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동물원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원 중 하나이다. 세계 최초의 대규모 영화 스튜디오 단지인 바벨스베르크가 있는 베를린은 국제 영화 제작을 위한 장소로 점점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또한, 베를린은 축제, 다양한 건축물, 야간 유흥, 현대 예술, 그리 매우 높은 삶의 질로 잘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 베를린은 세계적인 기업가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를린에는 3개의 세계유산이 있다. 이 세계유산으로는 박물관섬, 포츠담과 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그리고 베를린 모더니즘 주택 단지가 있다. 다른 랜드마크로는 브란덴부르크 문, 국가의회 의사당, 포츠담 광장,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베를린 장벽 메모리얼,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전승기념탑, 베를리너 돔,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인 베를린 텔레비전탑이 있다. 또한, 베를린에는 베를린성이 있는 박물관섬, 독일 역사박물관, 유대인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주립도서관, 국립 오페라, 필하모닉 관현악단, 베를린 마라톤 등의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오케스트라와 스포츠 행사가 있다.[4]
어원[편집]
'베를린'은 독일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것이고 실제 발음은 한글로 표기할 경우 베얼린(/bɛɐ̯'liːn/, 표준 독일어 기준)에 가깝다. 영어로는 벌린(/bə(ɹ)ˈlɪn/)이라고 읽으며, 프랑스어로는 베를랭(/bɛʁlɛ̃/)이라고 읽는다. 한자로 음역하면 백림(伯林)이라고 읽는다. 대한민국의 활자매체에서 동백림, 서백림하면 각각 독일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지칭하는 것이며 과거 동백림 사건의 동백림도 동베를린을 의미한다. 베를린(Berlin)이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살던 서슬라브계 민족인 폴라브인의 언어로 '물기가 많은 땅'을 가리키는 'Birlin' 또는 'Berlin'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새끼곰'을 뜻하는 말로 잘못 알려져 왔던 탓에 이미 1280년부터 쓰였던 도시 문장에도 새끼곰이 들어가게 되었다.
역사[편집]
초기 역사[편집]
약 1,500년 전에는 현재의 베를린 지역에 다양한 슬라브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독일인 정착자들이 1100년대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베를린은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 (Coelln)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두 마을은 통상의 중심지였다.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하였고,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15세기에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을 그들의 관저로 만들었다. 30년 전쟁 중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인구가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편집]
베를린은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래 다시 번영하였다. 그는 브란덴부르크주를 1640년부터 1688년까지 통치하였고, 산업을 촉진시키고 건설에 후원하였다. 그의 통치아래, 슈프레강과 오데르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였다. 170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1710년에는 베를린, 쾰른과 3개의 이웃 집단들이 통합하여 하나의 베를린을 이루었다. 1700년대에 베를린은 작은 읍에서 번영하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증대하였다.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였고, 산업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1806년부터 1808년까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그가 떠나자 독일의 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후 1871년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다. 도시의 인구는 1871년에 826,000명에서 1910년에 2,076,200명으로 늘어났다.
불안한 시대[편집]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독일 제국이 무너졌고, 베를린은 새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파업, 폭동,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도시는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베를린은 계속 자라났고, 1920년에는 베를린 대확장으로 7개의 도시들, 59개의 마을, 27개의 소유지가 베를린에 합쳐졌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로 번져간 경제 대공황에 의하여 타격을 받아, 후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세워지는 원인이 되었다.
분단[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독일을 점령한 것과 별개로 베를린도 4개로 나뉘었다.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서베를린은 서독과는 다른 서방 연합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었으나, 행정권은 서베를린에서 행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독의 수도가 될 수 없었고 분단기 서독의 실질적인 수도는 본이었다. 한편 동베를린도 소련군의 점령지로 간주되었으나, 사실상 동독의 수도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냉전 시기 서베를린은 동독으로 둘러싸인 자유 진영의 섬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동독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이는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때 서베를린의 시장직을 역임했다. 이 냉전 시기의 영향으로 인해 서독의 항공 허브로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등이 번성하게 됐고, 베를린은 지금도 항공 교통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편이다.
통일 이후 독일의 수도[편집]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해체되고,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연방 주 지위를 얻었다. 도시이자 독일의 연방주인 곳은 함부르크와 브레멘뿐이다. 분단 이전부터 수도였기에 별다른 이견 없이 1991년에 수도로 확정되었다.[5]
주민[편집]
본고장 독일인 이외에 인구의 15%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베를린에 근로자로 들어왔는데, 그중의 절반은 튀르키예인들이다. 베를린은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터키인들의 도시로 알려졌다. 또한 그리스, 이탈리아, 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러시아인들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들도 살고 있다. 2017년 기준 베를린 시민의 15%는 개신교인 루터교 신자이고, 9.2%는 가톨릭, 8.0%는 이슬람교, 0.8%는 유대교, 1.7%는 기타 종교 신자이다. 무종교 비율은 64.9%이다.
관광[편집]
영어가 상대적으로 잘 통하는 편인 독일 내에서도 베를린은 영어가 상당히 잘 통하는 도시이다. 독일어를 못해도 영어를 잘하면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수준. 한국인이 식당이든 매장이든 가면 처음부터 영어로 질문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지간한 버스기사들, 택시기사들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편이다. 명소로는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 근처에 있는 국가의회의사당, 소련군 전승기념비,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다국적기업 유럽지사들의 빌딩들이 있는 포츠담 광장, 동서 베를린 경계의 연합군-소련군 초소 중 가장 유명한 체크 포인트 찰리, 티어가르텐, 그리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유명한 베를린 초역(Zoologischer Garten) 앞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 등이 있다. 시내에서 빤히 보이는 TV타워(Fernsehturm)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위치는 알렉산더 광장에 있다. 티어가르텐에는 보오전쟁, 보불전쟁 승전, 독일제국 수립 기념으로 1873년에 지은 전승기념탑 및 독일제국 수립의 주역 3인방(룬, 비스마르크, 몰트케) 동상이 있다. 100번 버스를 타면 전승기념탑 앞에 세워 준다. 매년 2월에는 베를린 영화제도 열리며, 수여되는 상은 황금곰상이다. 종교시설로는 베를린 대성당(베를리너 돔)이 웅장하다. 알렉산더 광장에 갤러리아 백화점도 있는데, 특색이 있진 않으나 나름 쇼핑할 만한 게 있는 편이다. 메세 베를린이라는 전시장도 IFA가 개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포츠담은 RE(레기오날 익스프레스)로 약 30분 거리이다. 포츠담까지 가기 위해서는 C구간 티켓을 끊어야 한다. 기차로 한두 시간 안에 폴란드도 갈 수 있다. 오더강 부근에 있는 폴란드와의 국경 도시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 역(Frankfurt an der Oder)은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열차의 필수 정차역이자 국경역이다. 독일 서부에 있는 흔히 프랑크푸르트 하면 생각나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과는 전혀 다른 도시이니 주의해야 한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동부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표를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행 표를 끊어 주니 주의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오더 역에는 ICE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행 ICE 표 달라고 하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가는 걸 주겠지만 확인해서 나쁠 건 없다.
베를린 동물원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담 거리라고 부르는 명품거리가 있다. 독일어 정식 명칭은 Kurfürstendamm이며, U반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명품거리가 약 1 km 길이로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데, 베를린에서 쇼핑한다면 필수. 독일에 몇 개 없는 애플 스토어도 여기에 있다. 마약과 매춘으로 유명한 Kurfürstenstraße와는 전혀 다른 거리이다. 동물원역 기준 쿠담거리와는 반대 방향인 동쪽에 있는 유서 깊은 카데베 백화점도 쇼핑에 좋다. 특히 식품관이 볼거리가 많다. 독일 주요 도시들은 과거 자신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프로이센 왕국의 문화유산보다는 통일 독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화유산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프로이센의 부정적인 면 때문이라기보다는 독일의 수도이다보니 현대 통일 독일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굉장히 다양하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대표적으로는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국립미술관, 이집트 박물관이 한 데 모인 박물관섬(Museumsinsel)이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근동의 유적들을 통째로 옮겨온 것으로 유명하다. 바빌론의 이슈타르 문과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이 가장 유명한 유물. 구 국립미술관에 대응하는 신 국립미술관은 박물관섬이 아니라 포츠담광장 남쪽의 쿨투어포럼(Kulturforum)에 위치해 있다. 신고전주의 이전까지 회화를 모아둔 회화박물관(Gemäldegalerie) 또한 이쪽에 있는데, 꽤 큰 미술관인데도 잘 안 알려져서 다른 박물관보다 한산하다. 박물관 섬 건너편에 있었던 훔볼트박스는 2019년 초에 철거되었다. 철거되기 전에는 베를린 성 복원 공사 홍보관처럼 사용되었다. 2018년 5월 당시 박스 겉면은 스폰서인 삼성의 로고로 랩핑되어 있었다. 물론 이 광고비 중 일부는 베를린 성 복원 공사 자금으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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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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