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지
선상지(扇狀地)는 골짜기 어귀에서 하천에 의하여 운반된 자갈과 모래가 평지를 향하여 부채 모양으로 퇴적하여 이루어진 지형이다. 선상지의 윗부분을 선정, 중간 부분을 선앙, 말단 부분을 선단이라고 한다.[1]
내용[편집]
선상지(alluvial fan)는 산 아래의 평원에 강에 의해 운반된 자갈, 모래 등의 물질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부채 모양의 지형이다. 산의 급한 경사를 따라 빠르게 흐르던 하천이 산 아래의 평지를 만나면서 그 유속이 느려지게 되는데, 그 결과 퇴적물을 운반하는 능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어 하천을 따라 운반되던 물질들이 퇴적되게 된다. 이 때 강이 유입되는 하나의 지점에서부터 퇴적물이 퇴적되기 시작하는데, 더 크고 무거운 자갈이 먼저 퇴적되고, 더 작은 모래 크기의 입자들이 멀리까지 방사상으로 운반되어 부채꼴 형태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선상지의 단면을 보면 선상지가 처음 퇴적될 때는 그 입자의 크기가 작으나 위로 갈수록 커지는 역전점이층리(reverse grading) 양상을 보인다.
선상지의 크기는 수 미터에서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예를 들어 중국의 신장 지역에 분포하는 타클라마칸사막의 남쪽 경계에 발달하는 선상지는 그 폭이 56.6km, 길이가 61.3km에 달한다. 이러한 선상지는 주로 지구조적인 원인으로 경사가 급격히 변하는 지형에서 자주 발달한다. 한반도에는 일반적으로 침식을 오랜 기간 받은 노년기 지형이 나타나기 때문에 지형의 경사 변화가 급격하지 않아 선상지의 발달 정도가 미미하다.
선상지에서는 암석류(debris flow)가 흐르거나 물이 흐르는 과정 등 크게 두 가지의 퇴적 작용에 의해 퇴적물이 운반된다. 암석류는 중력사면운동(mass movement)의 한 형태로, 미고결 퇴적물 사이에 일정량의 물이 포함되어 액화된 결과 퇴적물이 유수 등의 운반매개체 없이 중력에 의해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때 퇴적물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암석류에 의해 퇴적된 퇴적체에는 미세한 입자부터 큰 입자들까지 모두 섞여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선상지가 물이 흐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경우, 하천을 따라 퇴적물이 운반되거나 또는 면상홍수(sheet flood)가 일어나며 퇴적물이 운반되게 된다. 이 경우 만들어지는 퇴적체는 사층리 등의 내부 구조를 가진다.
선상지들 중 물의 작용 없이 중력의 작용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선상지를 붕적선상지(colluvial fan)이라고 한다. 이들은 퇴적물이 중력에 의해 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현상, 즉 중력사면이동(mass wasting/mass movement)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중력사면이동 작용에는 산사태, 낙석, 중력류 등이 포함된다. 이들 중 절벽에서 풍화된 암석이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원추형으로 퇴적된 것을 애추(talus)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과 구별하여 물에 의해 퇴적물이 운반되어 만들어지는 선상지를 충적선상지(alluvial fan)이라고 한다.
선상지는 건조한 환경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특히 주기적으로 홍수가 일어나 고지대에서 침식이 일어나고 퇴적물이 다량으로 공급되는 경우에 흔히 만들어지곤 한다. 하천이 흔하게 나타나는 습한 환경에서도 선상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선상지들 중 여러 개의 선상지가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형태를 바하다(bajada)라고 하며, 이 단어는 "비탈길"이라는 의미를 갖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하였다.
선상지는 화성과 타이탄 등 외계 행성 및 위성에서도 관찰된다. 화성에서 선상지는 크레이터의 경사진 가장자리에서 중심부의 평평한 지형 사이에서 나타나는데, 화성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 로버가 게일 크레이터 일대를 탐사하며 선상지 및 여기에서 퇴적된 하천 퇴적층을 발견하였고, 이는 과거 화성에 물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타이탄에서는 토성 탐사선 카시니가 레이터 탐사를 통해 선상지를 확인하였는데, 이들은 아마 타이탄 표면을 따라 흐르던 메탄과 에탄으로 이루어진 강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2]
구성[편집]
선상지는 산지와 평지 사이의 곡구에 갑자기 경사가 완만해질 때 유속의 감소로 인한 하천 퇴적이 반복되어 형성된 부채꼴 모양의 퇴적 지형이다. 지형도에서는 각 등고선이 곡구를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배열되어 있다. 선상지의 윗부분을 선정, 중앙부를 선앙, 말단을 선단이라고 하는데 경사가 선단으로 갈수록 완만해진다.
퇴적물들은 굵은 입자(자갈, 모래)가 많으며, 물이 잘 스며들기 때문에 하천이 복류한다. 선정부에서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로서 복류하다가 선단부에서 샘으로 솟아난다. 이에 따라 선앙보다는 선단에서 용수를 구하기가 용이하다.
선상지의 토지 이용은 선정이나 선앙에서는 밭이나 과수원이 나타나며, 선단에서는 물을 구하기 쉬우므로 취락(집촌)이나 논이 분포한다. 그러나 관개시설을 확충하여 선정이나 선앙 지역에서도 논농사를 행하기도 한다.
한국은 노년기 지형이므로 산지의 대부분이 저산성 구릉지이기 때문에 경사의 급변점이 적어 선상지의 발달이 미약하며, 안변군 석왕사 부근 등 일부 지역에서 분포하지만 규모가 작다.[3]
선상지 현황[편집]
선상지는 하천의 운반물 중에서 입자가 큰 것들이 주로 쌓여 형성되기 때문에 사력층(砂礫層)이 많이 나타나며, 토질은 척박한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물이 귀하여 과거에는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었다. 근래에는 곡구에 저수지를 만들어 관개용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밭이 논으로 많이 바뀌었다. 사천 선상지는 오늘날 거의 전체가 논으로 개발되었다. 금광평 선상지는 논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지만 아직 밭과 더불어 소나무 숲이 띄엄띄엄 분포한다.
선상지는 퇴적층의 두께가 두꺼운 것이 원칙이라 알려져 있었다. 대한민국의 선상지는 일반적으로 퇴적층이 얇고 그 밑에는 기반암의 침식면이 나타나서, 사천과 금광평 선상지도 산록완사면(山麓緩斜面) 또는 페디먼트(pediment)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기반암의 침식면은 상당한 기복을 보이고, 지표면의 형태는 퇴적층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으며, 배후 산지의 토사 공급원이 분명하여 선상지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최근에는 불국사 선상지, 경주선상지, 팔공산 선상지, 청도선상지, 포천 이동선상지 등 선상지를 공식적인 지형명칭으로 사용하면서 이를 주제로 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 한국의 선상지를 재조명하는 계가가 되고 있다.
한때, 선상지로 소개된 지형 가운데에는 산록완사면으로 밝혀진 예도 적지 않았다. 이는 종종 침식지형 또는 최적지형이냐의 정의 문제에 치중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였다. 최근에는 선상지를 구분할 때 지형형성기구 및 과정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이 기초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종합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곡구를 중심으로 해서 동심원상의 등고선을 갖는 면적 2㎢ 이상의 선형 지형이 선상지로 확인되었거나 선상지로 선정된 사례가 있다. 강릉의 금광평선상지, 제천선상지, 경주시 안간선상지, 경주선상지, 경주시 입실선상지, 울산시 가천선상지, 경북 청도선상지, 대구시 월배선상지, 경남 합천군 적중선상지, 전남 구례군 천은사선상지, 구례군 화엄사선상지, 경남 사천선상지 그리고 경남 삼천포선상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13개의 선상지는 선상지의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 부합되는 사례로 보고되고 있다.[4]
하룻밤 새 형성된 선상지[편집]
2006년 설악산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설악산국립공원은 탐방로 16㎞가 유실되는 등 유례없는 큰 피해를 봤다. 이 폭우는 철제 다리와 계단, 난간을 쓸어가고 계곡에 집채만 한 바위를 남겼지만 지질·지형학계에는 '하룻밤 새 형성된 선상지'라는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선물을 안겼다.
선상지는 좁은 산지에서 넓은 평지로 하천이 흘러나오는 곳에 형성되는 부채꼴 퇴적 지형으로 강릉 금광평 선상지, 제천 선상지, 경주 안강 선상지, 사천 선상지 등 국내에 10여 곳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단층운동으로 지형에 기복이 생긴 곳에서 수천∼수만 년 동안 형성됐다.
애초 설악산은 선상지가 생기기 힘든 곳이다. 능선과 계곡이 1000m 이상의 고도차가 날 정도로 가파르고 집중호우가 잦아 토양침식이 심하다. 토양층이 빈약하니 퇴적 지형인 선상지를 이룰 퇴적물도 부족하다. 2006년 이전에 설악산에 선상지가 보고된 적도 없다.
연구자들은 2006년 집중호우가 일종의 방아쇠 구실을 했던 것으로 설명했다. 설악산 선상지의 유역이 2006년 무렵 지형적 임계점에 도달했다며 매우 작은 외부 충격에 의해서도 마치 방아쇠를 살짝 당겨 총알이 격발되는 것처럼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006년 설악산에 많은 비가 오긴 했지만 1990년 2003년 2011년에도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 2006년에 '격발'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후에 새로운 선상지가 더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5]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선상지〉, 《네이버국어사전》
- ↑ 〈선상지〉, 《네이버백과사전》
- ↑ 지리지기, 〈하천 퇴적지형 - 선상지〉, 《네이버블로그》, 2007-04-30
- ↑ 〈선상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조홍섭 기자, 〈수만년 걸리는 ‘부채꼴 퇴적지형’ 설악산서 하룻밤 새 만들어져〉, 《한겨레》, 2021-05-30
참고자료[편집]
- 〈선상지〉, 《위키백과》
- 〈선상지〉, 《네이버국어사전》
- 〈선상지〉, 《네이버백과사전》
- 지리지기, 〈하천 퇴적지형 - 선상지〉, 《네이버블로그》, 2007-04-30
- 〈선상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홍섭 기자, 〈수만년 걸리는 ‘부채꼴 퇴적지형’ 설악산서 하룻밤 새 만들어져〉, 《한겨레》, 2021-05-3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