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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9일 (금) 00:27 판

중화학공업(Heavy and Chemical Industry, 重化學工業)은 중공업에 화학공업을 곁들인 것의 총칭이다. 산업을 중화학공업과 경공업으로 나눌 때 철강, 비철금속, 기계, 화학, 석유, 석회 제품, 펄프 등을 생산하는 공업을 중화학공업이라 하고 고무, 피혁, 섬유, 제재, 요업, 식료품 등을 생산하는 공업을 경공업이라 한다.[1][2]

개요

중화학공업은 유엔 기준에 의하면 중화학공업에는 고무 제품, 석탄 제품 그리고 비금속 광물이 포함된다. 1960∼1970년대 유엔(UN)은 제조업을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으로 중화학공업을 생산재와 기계류로 나누었다. 중화학공업은 제품용적에 비하여 중량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것을 만드는 제조업이다. 생산과정에 있어서 강대하고 견고한 생산수단이나 강건한 체력을 내용으로 하는 노동력을 사용하는 제조업을 중화학공업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으며 연구자에 따라서는 중화학공업에 광업을 포함시키고 광업과 광산물을 원료로 하는 것을 중화학공업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일반적 정의인 경제 용도별 기준(economic use approach)에 의하면 중화학공업은 생산재공업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W. 호프만(Hoffmann)은 제조업을 소비재공업과 생산재(자본재) 공업으로 나누고 생산재공업에 금속 및 비철금속, 기계류, 차량 등 수송설비, 화학을 포함시켰다.[3]

우리나라 역시 중화학공업에 대한 최초 연구서이자 이후 중화학공업화의 기초가 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보고서(한국과학기술연구소, 1970)에서 이 유엔 기준에 따라 화학, 석유 및 석탄제품, 토석 및 유리, 제1차 금속, 금속제품, 기계, 전기기기, 수송용 기기 등을 중화학공업에 포함시켰다. 이후 광공업 통계의 기준이 되는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를 작성하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이 이 분류를 기준으로 1970년 3월 개정된 한국표준산업분류표에 따라 중화학공업 일반기준을 제시하였다. 현재 통계청에서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라 제조업을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화학공업에는 산업 중분류 중 펄프 및 종이(C17), 석유정제(C19), 화학제품(C20), 의약품(C21), 비금속광물(C23), 1차 금속(C24), 금속가공(C25), 전자부품, 컴퓨터, 영상음향(C26), 의료정밀(C27), 전기 장비(C28), 기계장비(C29), 자동차(C30), 기타 운송장비(C31)가 포함된다.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역사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은 1970년대에 들어 급격히 발전하게 되었다. 1960년대의 수출주도형 공업화의 전략으로 2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은 경제 규모의 양적 팽창과 수출의 증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농업의 정체, 원료 및 중간재의 해외 의존도 증가, 외채 부담 증가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 등의 부작용이 뒤따랐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 선진국들의 경공업 제품에 대한 수출규제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 석유파동은 정부로 하여금 그동안의 경공업 중심 수출 지향적 정책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유인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수입에 의존했던 중간재를 국내 공급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1972년부터 실시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본격적인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실시하였다.

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고자 한 산업에는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1973년 6월에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수립하고 철강, 조선, 비철금속, 기계, 전자 및 화학공업의 6대 전략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금융 및 세제상의 혜택을 주었다. 동시에 필요한 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추진하였다. 이로 인해 그동안 진행된 여러 가지의 수출지원 정책들은 크게 축소된 반면 중화학공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년∼1976년) 동안 종합제철, 석유화학 계열 공장, 기계공업 육성 등 중화학공업의 건설이 촉진되었다. 그리고 철강, 전자, 조선, 석유화학콤비나트 등 중화학공업의 중점적인 건설에 힘입어 제조업 부문은 부가가치 생산에 있어 1971년에서 1976년 동안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7%에서 35.0%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정부는 교육과 훈련 제도를 대폭 개선하여 중화학공업에 필요한 엔지니어와 기술을 갖춘 고급 노동력을 키워내기 위하여 기술훈련 센터, 기술공업 고등학교 및 전문대학교 등을 신설하였고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하여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학자들을 유치하는 노력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중화학공업이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 11.9%에서 1980년 26.3%로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은 수입 대체 효과를 유발하였으며 중화학공업 제품의 수출을 크게 증대시켰다.

중화학공업의 급격한 성장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변화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산업 내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점차적으로 커지기 시작하여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기할 수 있게 되었고 수출상품 중에서 차지하는 중화학공업제품도 그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즉 선박과 철강제품의 수출이 가발과 합판 등 경공업 수출 품목들을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자제품과 수송기계의 수출이 전통적인 수출 품목인 섬유의 수출 비중을 능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부 주도형 중화학공업의 육성정책은 1980년대 이후부터 정부에 의하여 조정을 받게 되었다. 정부는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과잉투자 및 과당경쟁을 해소하기 위하여 정부 주도의 규제 및 지원을 통해 중화학공업의 축소 및 조정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기업 간의 합병 또는 생산 전문화를 유도하여 그룹별 사업포기와 교환을 통해 중화학공업 부문에 대한 투자조정을 시도하였다.

현황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도성장기(高度成長期)에 상승 추세를 지속하다가 1980년대 말 이후 최근까지는 대체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조업 내에서는 2008년 중화학공업 83.5%, 경공업 16.5%로 중화학공업 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이다(부가가치 기준). 1980년대 이후 정부의 중화학공업 조정을 위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중화학공업의 성장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화학공업 비중의 상승 추세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크게 내수/수출 간 양극화와 중국 효과의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최근 내수 침체로 인하여 중화학공업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수 업종의 비중이 큰 경공업이 더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제조업이 고도성장을 하면서 국내 경공업 부문의 경쟁력 상실로 동 부문의 생산이 급속히 대중국 수입이나 현지 생산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데 따른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내수/수출 간 양극화는 순환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향후 완화될 것으로 보이나 중국 효과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중화학공업 비중의 상승 추세는 향후 그 속도는 훨씬 둔화되겠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주

  1. 중화학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2. 중화학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3. 중화학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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