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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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독일어: Hamburg, 영어: Hamburg)는 독일 북부에 있는 주이며 도시이다. 독일 최대의 항구 도시이자 제2의 대도시이다. 정식 이름은 함부르크 자유 한자 시(독일어: Freie und Hansestadt Hamburg)이다. 알스터강, 빌레강과 엘베강이 흐른다. 북쪽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남쪽으로는 니더작센주와 접한다. 도시의 기원은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950년 즈음에 엘베 강 유역에 함마부르크(Hammaburg)가 건립되고, 중세에는 한자동맹(Hansa-Städtebund)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독일 연방 정부 조직 형태상 함부르크는 지방 자치주에 해당한다. 시민은 개신교가 많고, 정치적으로는 독일사회민주당의 세력이 강하다.
개요
함부르크의 면적은 755.22km²이며 인구는 1,945,532명(2022년 12월)이다. 한국의 광역시 마냥 한 도시가 그대로 주(State)이기도 한 곳이다.
함부르크는 북해 연안에서 독일 최대의 항구이며 엘베강 하구 110km 상류의 양안에 걸쳐 위치해 있다. 인구 규모로는 베를린에 이어 독일 제2의 도시이다. 유럽 전체로 따지면 7번째로 큰 도시이다.
함부르크는 독일 전체에서 1인당 주민소득 1위를 달릴 정도로 부촌이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숫자만 4만 2천 명에 달하는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며 1년 연봉이 백만 유로(약 십여억원)를 넘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1천 명이 넘는다. 이는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그 밖에 세계 각국에서 온 3천여 곳이 넘는 회사들이 수입과 수출 거래를 위해 함부르크에 상주하고, 한국을 비롯해 각국의 영사관도 95개가 넘게 있다.
함부르크는 일찍부터 개방되고 자유로운 도시라는 명성이 있었다. 역사학자 에크하르트 클레스만이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없었다면 함부르크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외국인이 많은 도시였다. 그러한 역사를 비추듯, 1952년에 제정된 함부르크 헌법 전문은 명시적으로 도시의 세계 개방성을 규정한다.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는 역사와 지리를 통해 주어진 세계 항구도시로서의 특별한 임무를 독일 인민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 속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인민간의 매개자가 되는 것이다."가 그것이다.
전 세계인이 즐겨찾는 음식 햄버거(Hamburger)의 어원이 된 도시다. 함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북부에 고기를 다진 후 빚어서 구운 요리가 있었는데, 19세기에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 '함부르크의 스테이크'라는 뜻으로 햄버그(Hamburg) 스테이크라고 불렀고, 이후에 햄버그 스테이크와 채소를 빵 사이에 끼운 샌드위치가 개발되어 현재의 햄버거가 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함부르크 증권거래소의 소재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머천트뱅크인 베렌베르크 은행(Berenberg Bank)의 소재지이며 각종 국제기관 및 산하 기관들 또한 함부르크에 다수 소재하고 있다. 다양한 국제 컨퍼런스 또한 자주 개최된다. [1][2]
자연환경
함부르크 전체 면적의 14%가 녹색 숲으로 뒤덮여있는 것뿐만 아니라 시청 건물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다른 도시에 비해 녹색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많다. 산이 없고 대부분 호수와 평야로 뒤덮여 있는 북독일의 특성상 호수가 많다는 것도 함부르크의 특징이다. 호수와 강, 그리고 수로가 시 면적의 8%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전 면적의 28%가 경관 보호 및 자연보호 지역이며, 120개가 넘는 공원에 가로수만 20만 그루가 넘어 독일 최고의 녹색 도시로 평가받는다.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하셀브라크 언덕으로 해발고도가 겨우 116m에 불과하다.
함부르크는 해안가 평야 지대 특성상 서안 해양성 기후에 속한다. 평균기온은 오히려 남부 산악 지대보다 더 높다. 1월 평균기온 1℃, 7월 평균기온 17℃, 연 평균기온은 9℃로 함경북도 성진시와 비슷하다. 1년 총강수량은 760mm이지만 강수일수는 겨울에 집중되며, 냉습(Nasskalt)하므로 체감적으로 서울보다 따뜻하다고 보기 어렵다.
연평균 일조량은 1560.7시간이며 7~8월에 가장 햇빛이 많다. 독일 내에서도 'Schmuddelwetter'(슈무델베터)라 해서 겨울 날씨가 매우 나쁘기로 악명이 높다. 멕시코 만류의 습기를 머금은 서풍이 아주 강하게 부는데다 이를 막아줄 산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
함부르크 일대는 북해와 가까이 있으면서 엘베강 하구를 끼고 있다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지역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기원전 4세기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유물도 이미 발견된 바 있다. 4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작센족이 이곳에 몰려와 정주하며 부족의 근거지를 만들었다. 이후 작센족은 독일에서 한때 가장 강성한 부족이 되었지만, 8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가톨릭 선교를 구실로 이곳을 침공하였다. 프랑크족의 침공을 받은 작센족은 자신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 무려 40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작센족이 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집단 학살당했다. 작센족은 그들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 근 반세기 가량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종족의 몰살 위기에 처했고, 결국 살아남은 작센족들의 다수는 결국 카롤루스 대제에게 굴복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작센을 거의 평정한 카롤루스 대제는 810년 이곳에 가톨릭교회를 건립했다. 하지만 항복을 거부하고 외지에 숨은 작센족들이 이곳을 수복하기 위해 다시 공격해 올 것을 대비해 알스터강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함마부르그라는 성을 쌓았다. 이것이 오늘날 함부르크라는 도시의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이름이 함마부르그가 된 이유는 주변에 있던 큰 숲의 이름이 Hamm(함)이었기 때문이다. 831년에는 루드비히 신성왕이 이곳에 교구를 세웠고, 834년에 대교구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함부르크 교회는 이미 베르됭 조약 때부터 바이킹들의 출몰로 파괴되었고, 이후에는 슬라브족들이 함부르크를 침공하였기 때문에, 대주교좌는 함부르크에서 브레멘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2세기에 샤우엔부르크-홀슈타인 공작 아돌프 3세가 이곳 함부르크에 다시 시장을 열었고, 1189년에 프리드리히 1세 황제가 함부르크에 항구로서의 특권 및 무역의 특권을 부여하여 이곳에 대단히 융성한 중세무역도시가 만들어졌다. 1241년에 뤼베크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기초를 굳히고 14세기에 함부르크는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어 북해와 동해 사이의 중개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고, 1510년부터는 도시국가로서의 독립된 주권을 인정받았다. 1558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 독일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이곳 함부르크에 만들어졌고, 1678년에는 지금의 갠제마르크트 근처에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건설되어 헨델이나 텔레만 등의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아무런 유혈사태 없이 개신교의 도시국가가 되었고, 1767년에는 함부르크 국립극장이 만들어져, 북유럽의 예술 중심지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자동맹의 몰락 및 산업화 이후에도 함부르크는 계속해서 북독일의 경제중심지로 성장을 거듭하였는데 이때 이미 함부르크는 독일 전체에서 베를린 다음의 대도시가 되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과도 무역을 하면서 덴마크와 독일 간의 국경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였으나,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군의 점령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후 1813~1814년에 함부르크는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였지만 1815년 자유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1842년의 대화재 때에는 도시 건물의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는 피해를 겪었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지리적 위치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대화재 이후에도 매우 빠른 속도로 옛날의 입지를 회복하였으며, 전화위복으로 함부르크는 오히려 도시 전체의 리모델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이 대화재와 2차 대전으로 인한 파괴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후 독일 제국에 편입되어 함부르크 제국도시가 되었으며 일정한 자치를 누렸다.
1860년 함부르크는 민주적인 헌법을 도입하여, 정교 분리를 선언하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였다. 1871년에는 자치의 지위를 유지하며 독일 제국(the German Empire)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 활발한 대서양 무역을 통해 함부르크는 로테르담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로 성장하였으며 이 시기에 함부르크의 인구도 거의 네 배가량 증가했다. 이후 20세기에도 함부르크의 인구는 계속 증가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의 많은 젊은이들이 사망하고, 상업과 무역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화재와 전쟁을 거치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건물들도 현대적으로 재건축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하펜시티(Hafencity)라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황폐해진 변두리 항구와 도시 구역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였다.
산업
함부르크 경제의 중점은 항구업과 무역업에 있다.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이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매우 큰 매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Hapag-Lloyd와 Hamburg Süd의 본사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여행사로서 유럽 전체에서 상위 랭킹을 휩쓸다시피 한다. 제조업으로는 북독일 최대 산업체인 에어버스와 금속, 조선 등의 대기업이 있다.
함부르크 경제의 새로운 중점은 요즘 정보 산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독일 최고의 신문 잡지들을 거느린 독일 언론의 중심지였고, 오늘날에도 3,300개의 정보산업체를 보유한, 독일 정보산업의 명실상부한 메카이다. 슈피겔, 슈테른, 짜이트 등 독일에서 유명한 언론사의 다수가 함부르크에 있으며,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매일 함부르크에서 발행된 신문과 주간지를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조망한다. 물론 한국의 대부분의 전자정보 업체들도 그 지사를 함부르크에 두고있다.
교통
함부르크는 독일 제2의 대도시이기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북쪽에 치우쳐 있다 보니 육로를 통해 독일 서부나 남부로 가는 경우 제법 멀다. 함부르크 중앙역에서 ICE로 소요시간은 베를린, 하노버, 브레멘이 1시간 20분~2시간 정도이고, 프랑크푸르트가 4시간, 뮌헨이 6시간 30분 정도이다. 쾰른은 IC편으로 4시간 정도. 국제 노선으로는 덴마크 코펜하겐과 오르후스, 체코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는 EC가 다닌다. 함부르크 중앙역 근처 버스터미널(ZOB)에는 플릭스부스 위주로 노선이 다니는데, 하노버가 2시간 20분, 베를린이 3~4시간 정도이고 프랑크푸르트, 뮌헨 정도면 중간 경유에 따라 10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함부르크 국제공항(HAM)은 중앙역에서 S1 노선으로 30분 정도에 연결된다. S반 1호선은 수도권 전철 5호선과 같은 분기 형태로 되어 있다. 공항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공항역을 신설하면서 올스도르프역에서 공항 방면과 포펜뷔텔 방면으로 갈라지는 형태가 된 것. 하지만 5호선과 달리 3량 2편성 중련 운행 방식으로, 양 방향 모두 배차간격이 10분으로 동일하여, 공항에서 함부르크 시내로의 접근성이 양호한 편이다.
영국 런던행 저가 항공편은 일찍 싸게 구하면 편도 10유로 대에도 구할 수 있다. 거의 모두 유럽 내 단거리 노선이지만 에미레이트 항공의 두바이 노선이 있다.
함부르크의 지하철과 버스는 HVV(Hamburger Verkehrsverbund)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며, S반과 RE는 도이치반에서 운행하며, 독일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답게 잘 되어있다.
절대다수가 비보호 좌회전인 유럽에서, 함부르크는 희귀하게 좌회전 전용신호가 꽤 발달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만큼 유동량, 물동량이 엄청나다. 실제로 함부르크에서는 더 대도시인 베를린보다도 주요 도로에서 교통체증으로 차량통행이 꼬이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교육 및 문화
교육 면에서는 1919년에 설립되어 공립 종합대학교로 독일 북부에서 가장 큰 규모인 함부르크대학교와 1982년 설립된 함부르크-하부르크 이공대학교(Technische Universität Hamburg-Harburg) 등의 대학이 소재해 있다.
관광 문화적 요소로는 함부르크의 상징인 132m의 첨탑이 있는 장크트 미하엘리스 교회(St. Michael's Church), 독일연극관, 미술공예박물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르네상스풍의 시청사, 알스터호수, 미니어처원더랜드, 중세에 만든 선박 터미널인 란둥스브뤼켄(Landungsbrücken), 5대 복음교회라고 불리는 성 야코비(Sankt Jacobi) 교회, 성 피터(Sankt Petri) 교회, 성 캐서린(Sankt Katharinen) 교회, 성 니콜라이(Sankt Nikolai) 교회, 성 미카엘(Sankt Michaelis) 교회,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슈파이허슈타트(Speicherstadt)와 칠레하우스(Chile House)가 있는 콘토르하우스(Kontorhaus) 지구 등이 유명 관광명소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등가이기도 했던 레페르반(Reeperbahn) 번화가는 유럽에서도 잘 알려진 오락과 문화의 거리이자 비틀즈가 무명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명 축제로는 연 세 번 개최되는 함부르크 돔(Hamburger DOM) 축제가 있다.
관광
처음 함부르크에 도착하면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는 달리 옛 건물들보다는 현대 건물들의 비중이 높아 볼 거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함부르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단, 도시의 역사가 길다 보니 관광지들이 여기저기 띄엄띄엄 흩어져 관광 편의성은 떨어진다.
수많은 선박들의 불빛으로 찬란한 엘베 강의 야경과 이를 굽어보는 미하엘리스 교회(일명 미헬)의 132m 높이는 함부르크 경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알스터 호수도 볼거리로서 빼놓을 수 없다. 알스터 호수는 지금으로부터 810년 전인 1190년에 인공적으로 함부르크 중앙에 만들어진 호수로서, 원래의 목적은 함부르크에서 커다란 물레방앗간을 돌리기 위한 저수지용도에 있었다. 크기는 274만m² 정도이고, 1620년에 함부르크시가 요새로 재건되면서 롬바르스브뤼케, 케네디브뤼케 두 다리에 의해 비넨(內)알스터와 아우센(外)알스터로 나뉘어졌다.
레퍼반과 함께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융페른슈티크(Jungfernstieg) 가로 양쪽에 보리수가 쭉 늘어서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며, 반대편에는 백조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다. 이 융페른슈티크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하인리히 하이네도 감탄하여 노래한 적이 있다. 그리고 융페른슈티크역 출구에서 나오면 거대한 애플스토어가 있다.
함부르크 시청 건물의 아름다움도 매우 유명하다. 시청 전면 가까이로 가보면 "선조가 쟁취한 자유를 후세들이 지켜내기를 바라며"라는 라틴어 글귀와 함모니아 벽화로부터 시작해서, 독일 황제 20명의 입상들과 여러가지 조각들이 아름답다. 내부로 들어가보면 으리으리한 회랑과 고급스런 장식, 미술품 등이 한마디로 여긴 궁전이지 절대 시청이 아님을 과시한다. 겉보기보다 크기도 꽤 커서, 지상 112m, 지하 70m에 폭 111m, 방 647개를 자랑하는, 영국의 버킹엄궁(방 641개)보다도 더 큰 건물이며, 건물 안마당에 들어가보면 크고 아름다운 나체의 남녀동상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휘기아이아 분수대도 볼 수 있다.
운하를 건너 있는 하펜시티의 위용도 대단하다. 근대에 무역기지로 쓰였던 옛 벽돌 건물들을 그대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똑같이 생긴 벽돌 건물들이 운하를 사이에 두고 쭉 펼쳐져 있는 모습은 상당한 장관. 최근에는 이 곳에 오페라 하우스 등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현대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엘베 강을 건너는 지하터널, 브람스 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철도 모형을 포함해 실제로 모형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공항, 도시의 모형을 보유하고 있다.
함부르크 근교에는 프리드리히스루흐(Friedrichsruh)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 박물관이 있다.
함부르크는 독일 북서부 지역의 교통 요충지인 만큼, 이 곳을 기점으로 근처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도 용이하다. 브레멘, 올덴부르크, 뤼네부르크, 슈베린, 뤼베크 등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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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서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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