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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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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고산

노고산(老姑山)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산이다.

개요[편집]

  • 노고산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해발 10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서강대학교 뒤편의 완만한 구릉성 산으로, 호상 흑운모 편마암이 넓게 퍼져 있고 곳곳에 규장암이 노출되어 있다. 북한산의 한 지맥이 보현봉, 형제봉, 인왕산, 무악산, 금화산으로 이어지고, 금화산 자락인 이화여대 뒷산과 신촌역 앞의 바람산(風山)에서 이어지는 산이 노고산(老姑山)이다. 노고산은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산으로 산 밑에는 노고산마을이 있었다. 숭문고등학교 옆에 서낭당이 있고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 그 뒷산을 노고산이라 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고산말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노고산 약수가 있었는데 속병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속했던 행정동이었으며 2007년 1월 2일 마포구 대흥동에 통합되었다. 노고산 기슭에 있으며, 동쪽의 대흥동, 남쪽의 신수동, 서쪽의 서교동·창전동, 북쪽의 서대문구 창천동·대현동과 접해 있다. [1]
  • 노고산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산이다. 해발고도는 106m이다. 서강대학교 뒤편의 완만한 구릉성 산으로, 호상 흑운모 편마암이 넓게 퍼져 있고 곳곳에 규장암이 노출되어 있다. 북한산의 한 지맥이 보현봉, 형제봉, 인왕산, 무악산, 금화산으로 이어지고, 금화산 자락인 이화여대 뒷산과 신촌역 앞의 바람산(風山)에서 이어지는 산이 노고산(老姑山)이다. 옛날에는 한양 서쪽 끝에 있는 산이라 하여 한미산(漢尾山)이라 하였는데 잘못 전해져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한자어로 바뀌어 노고산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고산 일대에는 웃우물·큰우물·논우물·쌍정우물 등 여러 우물이 있었다 한다.[2]
  • 노고산은 서강대학교 뒷산으로 지도상에는 노고산동 체육공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전체 코스가 20분이면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산으로 마포구 서강대학교 후문에서 도서관 방향으로 올라가면 바로 왼쪽으로 작은 쉼터가 있고 산책로가 보인다.

노고산 역사[편집]

  • 옛날에는 한양 서쪽 끝에 있는 산이라 하여 한미산(漢尾山)이라 하였는데 잘못 전해져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한자어로 바뀌어 노고산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고산 일대에는 웃우물·큰우물·논우물·쌍정우물 등 여러 우물이 있었다 한다. 『대동여지도』나 「수선전도」, 『대동지지』 등에는 '노고산(老古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갑오개혁 때는 한성부 북서 연희방 성외 아현4계 노고산・세석리였다. 1914년 노고산리・세석리를 합쳐 고양군 연희면 노고산리라 하였다. 1946년 서대문구 노고산동이 되었다가, 1964년 마포구 노고산동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 '노고언덕'이 동문들 사이에서 모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50년 가까운 세월 모교를 품에 안아 온 노고산은 천주교 역사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당시 프랑스 선교사로 처음 조선 땅을 밟은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가 처형된 뒤, 신자들이 시신을 수습해 묻은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용산 철교와 인도교 사이 이촌동에 있었던 새남터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는데, 가족이나 동료 신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하여 노고산 언덕에 매장한 경우가 많았다.
  • 노고산은 6.25전쟁 당시 격전지이기도 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수복에 나선 미제5해병연대와 대한민국 해병대가 안산, 와우산과 105고지로 불리던 노고산 탈환작전에 나섰던 것. 서대문 방면으로 서울 중심에 진입하기 위한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미 해병대는 1950년 9월 21일 아침부터 격전을 벌인 끝에 오후 5시경에야 노고산을 점령할 수 있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미산을 노고산으로 부르기도 하며, 부천의 노고산도 큰 밭을 뜻하는 '한메'로 불리다가 한미산, 할미산, 노고산으로 바뀌었다.
  • 대흥동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오늘날 숭문고교 옆 서낭당 주변 마을에 많은 노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고을 원님이 마을 노인들을 산에 갖다 버리라 명했다. 이에 산신령이 나타나 '마을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면서 언덕 위의 집 한 채를 알려주었다. 그 집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원님을 꾸짖었다. 이에 원님은 노인을 산에 버리는 일을 중단했고, 그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바치는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 그 뒤로 서낭당 뒷산을 노고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글자 그대로 풀면 노고산(老古山또는 老姑山)은 노인산, 늙은 시어미 산, 늙은 어미 산, 늙은 아낙산 등이 된다.

주변 환경[편집]

  • 서울시 서대문구의 안산(鞍山)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금화터널 위를 지나면 우측에 이화여자대학교가 나오고 우로 연세대와 와우산 자락의 홍익대를 만난다. 즉, 좌로 뻗어서는 이화여대를 품고 큰 고개길 대현(大峴)을 넘어 노고산을 일으키면서 서강대를 감싸 4개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길러내는 어머니와 같은 품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노고산동은 법정동이고 대흥동이 행정동이다. 노고산동 동명은 이곳에 있는 노고산(老姑山)에서 유래되었으며, 노고산(老姑山)의 원래 표기는 노고산(老古山)이었다. 1947년 6월 서울시령 제2호로 동회제도를 실시할 때 노고산동회(老姑山洞會)가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서대문구 관할이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에 의해 행정동제도를 실시하면서 동회는 폐지되고 창산동(滄山洞)이 설치되어 노고산동을 관할하였다.
  • 1964년 7월 2일 서울특별시조례 제344호에 의해 노고산동 대부분과 창천동 일부분이 마포구로 편입되면서 노고산동이 따로 설치되어 노고산동 일원을 관할하였다. 이어 1964년 7월 3일 서울특별시공고 제360호에 따라 환지확정으로 세교동・신석동・대흥동 일부가 노고산동에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노고산동 구역과 범위가 확정되었다. 1980년 4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에 의해 노고산동 중 신촌로터리를 기점으로 노고산동 56의 90호를 연결하는 도로 이서지역을 제외한 전역과 대흥동 중 대흥동 16의 63호를 기점으로 16의 92호를 경유 3의 29호를 연하는 10m 도로를 경계로 한 이북지역 및 신수동 중 용산선(철도)을 경계로 한 동북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노고산의 명칭 유래[편집]

  • 노고산이라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비군훈련장을 떠올린다. 예비군훈련장으로 유명한 노고산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노고산이다. 경기 양주, 경북 영천, 전북 무주, 경기 용인, 강원 홍천, 황해북도 신평 등에도 있다. 전국 각지 노고산은 한자 표기도 대부분 '老姑山'으로 같다. 모교가 자리한 노고산의 본래 표기는 '老古山'이었다. 옛 문헌과 지도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수선전도>(首善全圖),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老古山'으로 표기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1934년에 간행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 '老姑山'으로 표기되어 지금에 이른다. 한양(漢陽) 서쪽 끝에 있어 한미산(漢尾山)으로 불리다가 할미산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것이 한자로 '老古山'이 됐다는 설도 있다.
  • 노고산 명칭에 관한 전설도 전해진다. 오늘날 숭문고 근처 마을에 서낭당이 있었다. 그 일대에 많은 노인들이 살고 있었다. 고을 원님이 노인들을 산에 버리라 명했다. 산신령이 나타나 “큰 재앙이 있을 것”이라 예언하면서 언덕 위의 집 한 채를 알려주었다. 그 집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원님을 꾸짖었다. 원님은 노인을 산에 버리는 일을 중단했다. 그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바치는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 그 뒤로 서낭당 뒷산을 노고산이라 불렀다. 노고산의 공식적인 해발고도는 106m이다. '동네 뒷산' 높이지만 풍수에서 말하는 지맥(地脈)으로는 북한산의 한 지맥이 보현봉, 형제봉, 인왕산, 무악산, 금화산으로 이어지고, 금화산 자락인 이화여대 뒷산과 신촌역 앞 바람산(風山)에서 노고산으로 이어진다. 무악으로도 불리는 서울 서대문구 안산(鞍山)의 남쪽 자락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천도를 단행할 때 도읍지로 추천된 세 곳 중 하나였다. 계룡산, 북악, 그리고 안산이다. 당시 하륜(河崙)은 안산 자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였다. 안산을 새 도읍의 주산(主山)으로 삼았다면, 궁궐은 오늘날 연희동 네거리 정도에 자리 잡게 되었다.

노고산동[편집]

  • 노고산동(老姑山洞)은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행정동인 대흥동(일부)과 서교동(일부)이 관할한다. 북쪽으로는 서대문구 대현동·창천동, 동쪽으로는 대흥동, 서쪽으로는 동교동·창천동, 남쪽으로는 신수동과 접한다. 신촌로와 신촌로터리 일대를 중심으로 상업 지역이 분포하고, 그 주변으로는 빌라가 주를 이루는 주거 지역이 분포한다. 북쪽으로 신촌로와 접하고 있으며, 백범로, 서강로 등이 노고산동을 지난다. 철도 시설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신촌역을, 경의중앙선이 서강대역을 경유한다.
  •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영조 때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성외) 아현계에 속했고, 갑오개혁 이후에는 한성부 북서(北署) 연희방(성외) 아현4계의 노고산・세석리 지역이 되었다. 1911년 4월 1일 경성부 연희면 노고산리・세석리가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고산리와 세석리가 병합되어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노고산리로 개편되었다. 1936년 4월 1일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어 노고산정으로 개칭되었으며, 1943년 6월 10일 구(區)제도의 실시로 서대문구 관할의 노고산정이 되었다.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되어 서울시로 승격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노고산정에서 노고산동으로 개칭되다. 이후 1964년 6월 1일 마포구로 편입되어 오늘날의 서울시 마포구 노고산동이 되었다. 노고산이라는 지명은 남동쪽에 위치한 노고산(老姑山, 104.5m)에서 유래하였다.

노고산 주변 시설[편집]

  • 노고산은 신촌, 홍대거리와 인접해 있다. 국내 대학 중 유일하게 지하철역 4개가 주변에 지나가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연세대 정문-신촌역 라인이 밀도 높은 유흥가임에 반해 서강대 정문-신촌역 라인은 평범한 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기때문에 캠퍼스나 학교 주변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후문-대흥역 라인은 마찬가지로 이화여대 정문 앞 거리와 다르게 주택가와 기사식당 라인이 있고 조용하다.
  • 로욜라 동산은 사제관과 로욜라 도서관 사이에 꾸며진 공원이다. 로욜라 성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노고산 등산로와도 이어져 있다. 로토라 불리는 로욜라 토끼가 자주 출몰하던 곳이다.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로욜라 동산에는 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이었던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 성이냐시오관은 대학 성당이다. 500명 규모의 대강당이 있어서 대형 수업이 여기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교목처와 학생생활 상담연구소도 위치해 있다. 2층에는 성가대, 복사단, 전례부 등의 동아리방이 있다. 성당인지라 주말에는 결혼식장으로도 많이 쓰인다. 가톨릭 신자인 동문들이 이곳에서 주로 많이 결혼식(혼인성사)을 올린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노고산 (서울)〉, 《위키백과》
  2. 노고산(老姑山)〉,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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