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가덕도(加德島)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에 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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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있는 남해상의 섬. 면적 20.78㎢로 부산광역시에서는 대저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영도 면적의 약 1.5배이다. 부속 도서로는 북쪽의 눌차도가 있다. 북쪽으로는 강서구 녹산동 및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와 인접해 있고, 서남쪽으로는 거가대교를 통해 경상남도 거제시와 연결되어 있다. 가덕도의 행정구역은 법정동인 성북동, 동선동, 눌차동, 천성동, 대항동으로 나뉘고, 이들을 행정동인 가덕도동이 관할한다. 동 주민센터는 성북동에 있다. 또한 이곳에 강서구청 천가출장소가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적한 어촌 섬마을이었으며 눌차교가 2009년에 개통되면서 육지와 이어졌다. 선창마을과 녹산선착장 간을 운항하던 도선이 폐지되고 대신 58번 버스가 가덕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부산신항만 남측부두가 들어서고 거가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상교통이 예전보다 활발해졌다. 바람이 매우 강한 지역으로, 제주도와 비슷한 특징을 가진다. 2022년 부산시에서는 가덕도신공항을 위한 특별법에 포함된 공항 반경 10km 이내에 위치한 신도시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1]
- 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의 주도(主島)로,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적은 21.36 km2로 부산 영도의 1.5배이고, 해안선 길이는 36km이다. 최고봉은 연대봉(烟臺峰)으로 459.4m이다. 행정동은 가덕도동에 속하며, 법정동은 동선동·성북동·천성동·대항동·눌차동 등 5개가 있다. 가덕도는 낙동강 하구 서쪽의 남해상에 위치하고 있다. 가덕도의 명칭은 예로부터 섬에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섬에는 대항마을, 선창마을, 두문마을, 장항마을, 율리마을, 천성마을, 동선마을, 성북마을, 눌차마을이 있으며, 5개의 법정동과 10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거제도와는 약 8km 떨어져 있는데,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천성마을을 지난다. 이 섬의 북쪽에는 부산신항이 있고, 남쪽은 동남권신공항의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부산신항 남컨테이너부두가 있는 성북동에는 부산광역시기념물 제35호 지정된 가덕도 척화비가 있고, 섬 동북쪽에 연결된 눌차동에는 눌차왜성이 있다.[2]
- 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속하는 섬. 동경 128°49′, 북위 35°02′에 위치하는 가덕도는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낙동강 하구의 서쪽 해상에 위치한다. 가덕도 등대(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와 가덕도 동백군락(부산광역시 기념물, 1993년 지정)이 유명하다. 예로부터 섬에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가산, 연대봉(煙臺峰, 459.4m), 국수봉(269m)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했고, 동남쪽 해안에는 100m 이상에 달하는 해식애가 형성되어 있다. 북동단에 가로놓여 있는 눌차도(訥次島)는 북동에서 서남으로 뻗는 사주에 의해 형성된 육계도이며, 내만은 천성만(天城灣)이라 불리는 석호이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나 북서단에 만입된 천성만은 좋은 항구를 이룬다. 섬의 동안·남안·서안은 수심이 매우 깊으나, 북안은 얕은 갯벌로 되어 있다. 기후는 해양의 영향으로 온난하며, 연 평균기온 13.8℃, 1월 평균 기온 1℃, 8월 평균 기온 26.6℃이며, 연 강수량은 1,464㎜이다. 상록활엽수림과 낙엽활엽수림이 혼생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으로, 총가구의 50%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은 유자를 비롯하여 콩·양파·마늘로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파는 저장성이 높고 맛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가덕(加德)대구는 예로부터 임금님에게 진상되었을 정도로 숙취 제거 및 보양식품으로 미식가의 입맛을 돋우고 있으며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어류이며, 살아있는 대구는 가덕(加德)대구가 아니면 볼 수 없으나 앞으로 부산 신항만건설로 인해 멸종이 우려되고 있다. 그 밖에 숭어, 붕장어, 광어 등이 어획되며, 패조류와 해태(물김) 등이 소득원이 되고 있다.[3]
- 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동에 있는 섬. 면적 20.78㎢, 해안선 길이 36㎞이다. 1999년 12월 말 현재 1,284세대에 3,80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큰 섬으로, 최고점은 연대봉(烟臺峰:459m)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확인되며, 기록에 의하면 1544년(조선 중종 39) 이 지역에 가덕진(加德鎭)과 천성만호진(天城萬戶鎭)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1914년 창원군 천가면에 속하였고, 1980년 의창군 천가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89년 부산광역시 강서구로 편입되었다.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해안은 동쪽과 남쪽이 단조로운 반면 서쪽은 소규모의 곶(串)과 만(灣)이 연이어져 드나듦이 심하고, 북쪽 해안을 제외한 대부분이 가파른 해식애를 이룬다. 섬 전역이 산지로 이루어졌으나 일부 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보리·양파·마늘 등을 재배하며, 연안에서는 굴 양식이 활발하다. 주로 숭어·대구·청어 등이 많이 잡히며, 미역·홍합·바지락·조개류 등도 많이 채취된다. 남쪽 끝의 동두말(東頭末)에 있는 가덕도 등대는 남해의 관광명소로 꼽히며, 문화재로 천성진성(天城鎭城:부산기념물 34), 가덕도 척화비(부산기념물 35), 연대 봉수대, 가덕도 자생동백군(부산기념물 36) 등이 있다. [4]
섬의 분류[편집]
- 섬은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인 땅이다. 섬은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는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적당히 큰 섬은 도(島, island)라 하고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하여 이 둘을 통칭 도서(島嶼)라 한다.
- 섬은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나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와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섬도 있다.
-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가덕도의 명칭 유래[편집]
- 가덕도(加德島)는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서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부산 최대의 섬이다. 가덕도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일본의 침략이 잦았다. 조선 시대에는 곳곳에 군사 기지와 성을 축조하였고 병기를 만들던 곳집이 있었다고 한다. 가덕도가 해상 교류 및 군사적으로 중요시된 것은 1544년(중종 39) 가덕진과 천성진을 설치한 이후이다. 임진왜란 때는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기도 한데, 이는 가덕도가 현재의 진해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 '가덕'이라는 지명은 조선 시대 이곳에 있었던 가덕진관에서 비롯되었다. 가덕진관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가덕도에 설치하였으며, 휘하에는 천성 만호영과 가베량·옥포·지세포·조라포·안골포 만호영이 있었다. 가덕도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등산로, 봉수대, 빼어난 해안선, 전통 어로 방식인 숭어들이를 볼 수 있다. 유자와 대구가 유명하고, 곳곳에 산재된 문화 유적들로 생태·문화 관광지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섬이다. 가덕도 등대는 개항기인 1909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서구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의 하나이다. 2003년 9월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고, 해양수산부에서도 영구 보존 시설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가덕도의 역사[편집]
- 가덕도는 보개산이 바다 가운데 침몰되었다가 다시 솟아서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는 부산 최대의 섬이다. 최고봉인 연대산(459.4m)을 위시하여 수많은 산들이 펼쳐져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동북쪽으로 눌차·동선 사이를 이어주는 주변 백사장에서부터 기도원앞 바닷가의 경관, 동남쪽으로 대항 새바지의 넓은 자갈밭과 용두암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동백숲과 아동섬일대와 동두말, 가덕도 등대 주위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서남쪽으로 돌아 외양포 해수욕장, 두문의 길게 뻗은 솔섬, 천수말 코바위 등 가덕도는 해금강 절경을 방불케 한다.
- 가덕도는 역사의 섬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일본의 침략이 잦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군사기지와 곳곳에 성을 축조하였으며 병기를 만들던 곳집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왜군이 외양포에 만든 군사기지와 인공동굴 등 아픈 역사의 현장을 남기고 있다. 국토수호와 나라사랑의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등산로, 봉수대, 빼어난 해안선, 전통어로방식인 숭어들이를 볼 수 있고 유자와 대구가 유명한 곳, 곳곳에 산재된 문화유적들, 꼭 한번 다녀올 만한 곳이다.
- 1992년 부산여자대학교(現, 신라대학교)박물관 조사단에 따르면, 가덕도 대항마을과 외양포등지에는 패총과 토기가 발견되었으며, 두문마을에는 지석묘가, 선창마을에는 청자편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가덕도에는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중종 39년(1544년) 이 섬에 가덕진(加德鎭)과 천성만호진(天城萬戶鎭)을 설치, 이순신 장군이 하루를 묵고 갔다고 한다. 또, 지금의 덕문중,고등학교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곳집(병기제작소) 흔적이 조선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일제 때는 왜군이 외양포를 차지, 포대진지를 만들었고, 천성~대항 해안에 동굴을 파서 진지와 관측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가덕도의 지형특징[편집]
- 가덕도는 거제도 북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다. 대죽도를 비롯한 11개의 무인도가 부속 도서로 포함되어 있다. 가덕도는 북쪽이 넓고 남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역삼각형 모양을 띠며, 섬 전체가 하나의 고기복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이 산지이고 평지는 북부의 동선만과 서부의 천성만, 남부의 대항 일대에 소규모로 분포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 해안선의 길이는 36㎞로서 해안선 출입이 비교적 심한 편이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곳곳에 수직에 가까운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특히 동쪽과 남쪽 해안은 소형 선박도 접안이 어려운 높이 100m 이상의 해식애로 되어 있다.
- 천가산, 연대봉, 국수봉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였고, 최고봉은 연대봉(煙臺峰)으로 곳곳에 험준한 산지가 있다. 국수봉(269m)과 남산의 동쪽 중앙 계곡들을 중심으로 동백나무 군락(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6호)이 형성되어 있다. 북동단에 가로놓여 있는 눌차도(訥次島)는 북동에서 서남으로 뻗는 사주(沙洲)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이며, 내만은 천성만이라 불리는 석호(潟湖)이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나 서부에 만입된 천성만은 좋은 항구를 이룬다. 섬의 동안·남안·서안은 수심이 매우 깊으나, 북안은 얕은 갯벌로 되어 있다.
가덕도의 생태환경[편집]
- 동경 128°49′, 북위 35°02′에 위치한 가덕도는 면적 20.78㎢, 둘레 약 36㎞로 남해안으로 흘러드는 낙동강 하구의 서쪽 해상에 위치한다. 통일 신라 시대 대당 무역의 주요 기항지의 하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웅천군(熊川郡)에 속하였다. 1908년 창원군에 편입되고, 1910년 마산부(馬山府)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 창원시의 승격으로 의창군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에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편입되면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었던 정영도(영도)보다 7.9㎢가 더 넓은 가장 큰 섬으로 등장하였다.
- 기후는 해양의 영향으로 온난하며, 연평균 기온 13.8℃, 1월 평균 기온 1℃, 8월 평균 기온 26.6℃이며, 연 강수량은 1,464㎜이다. 상록 활엽수림과 낙엽 활엽수림이 혼생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수산업으로 총 가구의 50%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은 유자를 비롯하여 콩·양파·마늘로,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파는 저장성이 높고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가덕 대구는 활어의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유일한 대구인데, 부산 신항만 건설로 인해 멸종이 우려되고 있다. 그 밖에 숭어, 붕장어, 광어 등이 어획되며, 패조류와 해태(물김)등이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가덕도 등대(加德島 燈臺)[편집]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에 있는 고딕식 프랑스 등탑 형식의 유인(有人) 등대이다. 해양수산부에서 소유하고 있다. 1909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대한제국 때 건립한 41개의 유인 등대 중 하나이다. 등대의 모양은 부속사의 중앙에 8각형의 등탑을 올려놓은 모양이다. 기초와 기단부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벽체는 벽돌을 쌓아 만들어 외벽을 흰색으로 칠하였다. 등탑은 콘크리트로 쌓은 동체 위에 점등실을 두었고 점등실은 철제지붕과 유리로 되어 있다.
- 출입구에는 진입 계단의 폭과 비슷한 목재를 이용하여 경사 현관을 돌출시켜 설치하였으며, 상부 현판에는 조선 황실의 상징인 자두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지붕은 벽돌 벽체 위에 목조 트러스를 걸어 완만한 4모 형식으로 만들었다. 위쪽의 난간 벽은 벽돌로 쌓았으며, 버팀벽의 윗부분을 더 높게 올려서 고딕식 첨탑처럼 보인다. 정면 현관의 캐노피 지붕은 고딕 건축의 첨탑식 지붕에 한국 전통건축 양식의 주두(柱頭)와 접시받침이 있는 기둥을 받치고 있다.
- 부산 지역에서 일어난 근대건축의 도입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며 근대 서구 건축의 양식과 재료, 의장수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있었던 등대들은 원형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가덕도 등대만은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3년 9월 1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덕도의 볼거리[편집]
- 연대봉(煙臺峰) : 459.4m의 봉우리로 서쪽 해안가에 천성동과 천성선착장이 있고, 이 연대봉과 천성동 사이로 거가대교와 연결되는 거가대로가 지나간다. 가덕도 둘레길과 연결된 가덕도 등산로가 연대봉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위치로 보아 일본의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해안 봉수대이고, 동래직봉 소속의 연봉대로 서쪽으로는 웅천의 시화랑 봉수대와 연결되어 진해, 창원, 창녕, 성주, 칠곡, 김천, 상주, 문경을 거쳐 충주에 이른다. 복쪽으로는 녹산동의 성화 예산 봉수대에 연결되어 김해 분산성과 진영, 수산, 밀양, 청도, 경산, 대구를 거처서 연천의 성황당 봉수대에 닿게 된다. 동으로는 다대포의 응봉 봉수대와 교신을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 대항어촌체험마을 : 대항마을에서는 후릿그물체험, 선상낚시, 홍합따기, 어선타기 등을 할 수 있다.
- 동백군락지 :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6호로 가덕도 남단 동쪽 해안절벽 위에 24m2에 동백나무가 수만 그루 자생한다. 150년이 넘은 나무도 2,500여 그루가 있다. 1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꽃을 피워 절경을 이룬다. 가덕도의 야생동백은 잎은 유난히 윤기가 많고, 작은 꽃의 모양새는 야무지고 색깔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 가덕등대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로 근대 서구 건축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당시 건립된 등대들 중에 비교적 훼손이 덜되어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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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섬〉, 《위키백과》
- 〈섬〉, 《나무위키》
- 〈가덕도〉, 《나무위키》
- 〈가덕도〉, 《위키백과》
- 〈가덕도신공항〉, 《나무위키》
- 〈가덕도(加德島)〉, 《두산백과》
- 〈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가덕도(加德島)〉,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최평천 기자, 〈가덕도신공항, 엑스포 맞춰 2029년말 개항…육해상 매립식 건설〉, 《연합뉴스》, 2023-03-14
- 노형석 기자, 〈대한제국 마지막 건축물 ‘가덕도 등대’의 운명은…〉, 《한겨레신문》, 2020-12-27
- 이영희 기자, 〈우리나라 섬 3천348개 '세계4위'…매주 1곳씩 가도 64년〉, 《연합뉴스》, 2018-08-3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