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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4일 (화) 15:07 기준 최신판
재령평야(載寧平野)는 황해도 서북부, 재령강 하류에 있는 평야이다.
개요[편집]
- 재령평야는 황남 재령군 ·안악군 일대 재령강 유역의 평야.나무리(南勿里)벌 또는 극성(棘城)평야라고도 한다. 조선 인조(仁祖) 때 김자점(金子點)에 의해 어지둔보(於之屯洑) ·경우궁보(景祐宮洑) 축조의 공사가 완성됨으로써 재령평야는 한국 유수의 미작지대가 되어 진상미(進上米)로 널리 알려진 양질의 쌀을 산출하였다. 쌀 외에 조 ·밀 ·콩류 ·면화 ·잎담배 등 밭작물이 재배되어 왔고, 활발한 원예농업으로 사과 ·배 ·복숭아 ·참외 등의 산출도 많다. 한편 평야 서연부(西緣部) 구월산 기슭에는 단층선을 따르는 온천대가 형성되어 신천 ·삼천(三泉) ·달천(達川) ·안악(安岳) 등지에 온천이 있으며, 또 주변에 구월산 ·수양산(首陽山) ·장수산(長壽山) ·정방산(正方山) 등의 산과 한사군(漢四郡) ·고구려의 고분 등 유적이 많아 휴양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다.[1]
- 재령평야는 재령강에 의하여 이루어진 넓은 충적평야와 주변의 구릉성 평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약 500km2이다. 지사상(地史上)으로 보면 멸악산맥·구월산맥·평양·황주준평원 간에 만입한 대함몰지, 즉 고재령만(古載寧灣)이었는데 이 저함지(低陷地)가 재령강·서흥강 등의 퇴적작용과 서해안의 융기에 따라 낮고 기름진 평야가 되어 오늘날에는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평야의 대부분은 해면상 20m가 넘는 곳이 적고 만조 시에는 수면하 3m로 되는 저습지까지도 있다. 재령·신천은 평야의 중심지이고 특히 신천에서 쌀이 많이 난다. 옛날 조선 왕실에 바치던 재령미는 품질이 우수하여 평택미와 함께 그 성가(聲價)가 높았다. 구릉평야에서는 밀·콩·면화·담배가 나고 철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광산물이 산출된다.[2]
- 재령평야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걸친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평야이다. 재령평야는 황해도의 황주(黃州)·봉산(鳳山)·재령(載寧)·신천(信川)·안악(安岳) 등 5개 군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굴지의 평야이다. 극성(棘城)평야 또는 나무리[南勿里]벌이라고도 한다. 나무리벌은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라는 의미이다. 1926년에 안녕수리조합(安寧水利組合)·재신수리조합(載信水利組合) 등이 설립되면서 재령평야는 수리시설이 잘 갖추어진 곡창지대로 발전하였다. 재령평야는 ‘나무리벌’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라고 하여 생겨난 지명이라고 한다. 재령평야의 쌀은 예로부터 왕실의 진상미(進上米)로 유명하였고, 쌀알이 길고 커서 품질이 우수한 쌀로 인정받았다. 이 밖에도 재령평야의 농산물로는 사과·채소 등이 있다. 재령평야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연상하게 하는 여름의 푸른 물결과 황금만파(黃金萬波)를 이루는 가을의 누런 물결이 장관이다. 경승지로 알려진 장수산은 산성(山城)·석동십이곡(石洞十二曲)·묘음사(妙音寺)·현암(懸庵) 등의 고적이 많다. 한편 장수면에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을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만나 묵었다는 어실(御室)의 옛 터와 태자가 묵었다는 태자원(太子院)이 남아 있다.[3]
재령평야의 지형[편집]
- 재령평야는 원래 멸악(滅惡) ·구월(九月)산지 및 황주(黃州)준평원 사이의 함몰부, 즉 고재령만(古載寧灣)이 융기하고 재령강 및 지류인 서흥강(西興江)·은파천(銀波川)·서강(西江) 등 유수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가 된 충적평야이다. 사리원(沙里院) 북쪽 해식동의 흔적, 약 550년 전에 호수(海跡湖) 밑에서 솟아 나온 신천온천(信川溫泉)이 홍수로 매몰된 것을 약 200년 전에 다시 파냈다는 기록, 해주선(海州線)과 장연선(長淵線) 분기점인 상해(上海)가 고대 한인(漢人)의 상륙지였다는 구비전설 등이 증거이다.
- 재령평야의 육화는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평야 주변의 구릉지에 산재하는 고구려의 고분, 대방군(帶方郡)의 성터, 기타 유적으로 보아 약 1000년 전까지도 내만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천온천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 약 550년 전에는 고재령만이 담수의 석호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만조 시에는 재령평야의 일부가 저습지(低濕地)로 변한다. 평야는 대부분 해발고도 20m 이하의 낮은 땅이고 남률면(南栗面) 일부는 만조 때에는 해면하 3 m에 놓인다.
- 재령평야의 지형적 특징은 유적, 전설, 지명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명 중에는 물·바다·호수·포구(浦口)와 물에 사는 동식물과 관련된 것이 많다. 삼강면·청천면·서호면을 비롯하여 삼강면의 청룡리·상해리·용소리·용교리·학교리, 하성면의 용호리, 서호면의 신환포리·신호리·작도리 등이 좋은 예이다.
- 재령평야는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은 10℃ 내외, 1월 평균기온은 –5℃ 내외, 8월 평균기온은 24℃ 내외이다. 연강수량은 900㎜ 내외로 한반도 3대 소우지(小雨地) 중 하나이다.
재령평야의 생태환경[편집]
- 저습지였던 재령평야의 개간은 조선 인조 때 시작되었다. 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김자점(金自點)이 벽해정(碧海亭)이라고 불리는 북률면 동남쪽의 초원지대에 기러기 떼와 물오리 떼가 모여드는 것을 보고 무주공지(無主空地)를 개간하게 되었다. 그는 청수면 전탄(箭灘) 부근에서 북률면에 이르는 제방을 쌓고 재령강의 물을 저수하는 보와 이를 끌어들이는 수로를 만들었다. 이렇게 조성된 농경지와 수리 시설은 경우궁(景祐宮)에 속하였기 때문에 '경우궁들', '경우궁보(景祐宮洑)'라고 불렸다. 이로써 재령평야는 유수의 미작 지대가 되어 진상미(進上米)로 널리 알려진 양질의 쌀을 수확하였다. 쌀 외에 조·밀·콩·면화·잎담배 등이 재배되었고 사과·배·복숭아·참외 등의 생산도 많다.
- 철광석도 재령평야의 중요한 산물이었다. 재령평야의 대표적 광산인 금산광산(金山鑛山)은 노천광(露天鑛)으로 수철광산(水鐵鑛山)이라고 불렸는데, 이곳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철광석이 채굴되어 농구와 일반 생활용구의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금산광산에서 생산된 철광석은 재령강의 수로를 거쳐 송림제철소나 일본으로 수송되었다.
- 재령평야에는 신환포와 남포 사이에 정기항로가 있어 수운(水運)이 편리하였다. 또 평야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해주에 이르는 해주선과 동서로 횡단하여 장연에 이르는 장연선이 다른 지방과 연결되어 철도교통도 편리하였다. 도시는 재령을 중심으로 동쪽의 사리원, 서쪽의 안악, 남쪽의 신천 등이 형성되어 있다.
한반도의 평야[편집]
- 한반도의 평야(平野)는 주로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 해안, 큰 강의 하류 지역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고, 평야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던 중 상공업이 성행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평야 지대의 농촌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논과 강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북쪽의 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남향의 산기슭은 햇볕을 잘 받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물이나 시냇물은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하다.
- 평야 지역의 농촌에서는 물을 대기 쉬우면 논으로 이용하며, 홍수 때 물에 잠기던 곳을 둑으로 막고 수문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바닷물을 막아 물을 빼내고 논으로 만드는가 하면 경사진 곳은 층층이 논두렁을 쌓아 논밭으로 개간하기도 하며,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로서 갈수록 현대화가 추진, 발전되고 있다. 또한 물이 많지 않은 곳에는 밭을 일구어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작물과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한다.
재령군(載寧郡)[편집]
- 황해도 중앙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봉산군·평산군, 서쪽으로는 안악군·신천군, 남쪽으로는 벽성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5°33′∼125°56′, 북위 38°09′∼38°34′에 위치하며, 면적 739.8㎢이다. 서남부에는 멸악산맥이 동서로 뻗어 있다. 중부의 상요봉(相堯峰, 462m)·장수산(長壽山, 747m)을 비롯해 장수산의 제1봉인 보적봉(寶積峰)과 제2봉인 보장봉(寶藏峰)이 있고, 남쪽으로는 평산군과의 경계에 백락산(白樂山, 547m), 벽성군과의 경계에 운진봉(雲津峰, 600m)·운달산(雲達山, 494m)·대덕산(大德山, 494m) 등이 솟아 있다.
- 중부 이북은 재령강(載寧江)·은파강(銀波江)·서흥강(瑞興江) 등의 퇴적 작용과 서해안의 융기에 의한 높이 20m 이하의 광대한 평야를 이룬다. 평야지대를 북류하는 재령강은 대표적인 강으로 삼강(三江) 부근에서 은파강·서흥강과 합류하고, 하류에서 서강(西江)과 합류하기 때문에 항상 수량이 풍부해 관개와 수운에 도움을 준다.
- 검산(劍山) 서쪽에는 내를 막아서 만든 서지(西池)가 있다. 재령평야에 위치해 농업 생산량이 많고 재령강을 통한 교통도 활발했던 율곶방(栗串坊) 등의 북부 지역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었다. 이 군은 평야의 경지율이 다소 높고 밭이 논보다 많기 때문에 쌀·보리·콩·목화 등이 고루 재배되고 있다. 재령강을 중심으로 한 재령 평야는 토질이 비옥하고 관개 수리 시설도 잘 되어 있어 쌀의 생산량이 많고 질도 우수하다. 읍 전역은 소규모 구릉이 있을 뿐 대부분 재령 평야(일명 나무리벌, 棘城平野)에 속한다. 재령 평야는 토질이 기름지고 수리 시설이 잘 된 보기 드문 넓은 평야로서 각종 농산물의 경작에 적당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나무리벌쌀이라 하여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며, 조선 왕실의 진상품이었다.
- 주요 농산물로는 밀·팥·콩·조·과일·박하 등이며, 산출량이 많아 곡창 지대라 불린다. 특산물로는 사과, 사당골의 수박, 수창리장의 가지가 유명하다. 전역이 일망천리(一望千里)의 대평야로서 재령 평야의 중심지이다. 동쪽에는 재령강이 곡류하고 서쪽에는 서강이 흘러 재신수리조합의 수리 시설과 함께 평야의 관개에 이용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밀·조·콩·팥·목화·과실 등이다.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 소재지는 청룡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삼지강면(三支江面)·은산면(銀山面) 등으로 되어 있었으나, 1938년 병합되어 삼강면이 되었다. 동남단에 소규모 구릉지가 있을 뿐 전역이 평지이다. 중앙부를 북류하는 재령강의 유역은 재령 평야에 속하는 옥야(沃野)이다.
- 북쪽은 언진산맥(彦眞山脈)이 꺼져서 얕은 고재령만을 이루었는데, 이 만이 메워져서 재령평야의 일부가 되었다. 재령평야는 곡창 지대로, 가꾼 쌀을 먹고도 남는다 하여 '나무리(남은) 들'이라 불렸다. 재령평야는 재령강·서강·전탄천(箭灘川) 등의 수리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안녕(安寧)·재신(載信) 수리조합과 함께 은파호·장수호 등이 갖추어져서 관개 시설은 거의 완전하게 정비되어 있다. 동쪽으로 재령강이 흐르며 은파군, 봉산군, 사리원시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군의 대부분은 재령평야 지대이다. 재령평야는 삼국시대에는 대부분이 만(灣)이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재령만의 융기와 재령강, 서강, 은파천 등의 지속된 퇴적작용으로 인해 습지로 바뀌었다.
재령강[載寧江][편집]
- 황해도 북서부(현 황북 은파군 ·황주군, 황남 신원군 ·재령군 ·은천군)를 북류하는 대동강(大同江)의 지류이다. 길이 129km. 유역면적 3,671km2. 해주 북방의 수양산(首陽山) 설류봉(雪留峰)에서 발원하여, 장수산(長壽山) 동쪽에서 멸악산맥을 가로질러 북류하면서 삼강(三江) 부근에서 지류 은파천(銀波川) ·서흥강(瑞興江)을 동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북류하다가 신천(信川) ·안악(安岳) 군계(郡界)를 이루는 지류 서강(西江)을 서안으로 받아들인 뒤 대동강 하구부로 흘러든다. 상류의 산지에서는 감입곡류를 하고, 중 ·하류의 평야부에서는 심한 자유곡류를 하여 연안에 우각호(牛角湖) ·배후습지 등이 산재한다. 망류(網流) ·분류(分流)가 많은 한편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광활한 재령강 유역 평야에서는 양질의 쌀이 생산되어 예로부터 진상미(進上米)였다. 유량이 풍부해서 36.5km 상류의 상해포(上海浦)까지 300t급 선박의 소항이 가능하여 곡물 ·광산물 등의 물자수송과 관개용수 공급에 큰 몫을 한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재령평야(載寧平野)〉, 《두산백과》
- ↑ 〈재령평야〉, 《위키백과》
- ↑ 〈재령평야(載寧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 〈평야〉, 《나무위키》
- 〈평야〉, 《위키백과》
- 〈재령군〉, 《나무위키》
- 〈재령평야〉, 《위키백과》
- 〈한국의 평야〉, 《위키백과》
- 〈재령평야(載寧平野)〉, 《두산백과》
- 〈평야(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재령평야(載寧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