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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8일 (일) 02:42 기준 최신판
장진호(長津湖)는 함남 개마고원 위를 흐르는 압록강의 지류인 장진강을 댐으로 막아서 조성한 2개의 유역변경식 발전용 인조호이다.
개요[편집]
- 장진호는 장진강에 댐을 설치하여 만든 인공호(人工湖)로 함경남도 장진군에 있다. 유역변경식 발전으로 성천강의 지류 흑림천으로 물을 돌려 장진강발전소를 가동시킨다. 장진강 하류에는 또 다른 발전소와 인공호인 랑림호가 있어 제2 장진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유역변경식 발전을 하는 인공호수이다.[1]
- 장진호는 면적 54.16km2. 저수량 10억 5,900만m3. 제1장진호는 황초령(黃草嶺:1,314m) ·마대산(馬垈山:1,745m) 등지에서 발원하는 장진강을 하류 약 40km 지점의 갈전리(葛田里) 협곡부에 중력식 콘크리트댐을 구축하여 조성한 인조호로 1934년에 완공하였다. 호수의 물을 황초령 중복(中腹)에 뚫은 24km의 도수(導水)터널로 인수하여 동해사면을 흐르는 성천강(城川江)의 지류 흑림천(黑林川) 계곡으로 떨어뜨려서 장진강발전소를 가동시킨다. 제2장진호(일명 낭림호)는 제1장진호의 댐에서 다시 약 50km 하류에 위치한 이상리(梨上里)에서 장진강 본류와 지류 오만동강(五萬洞江)의 합류점을 댐으로 막아서 조성한 인조호로 1937년에 착공하여 1941년에 완공하였으며, 규모는 제1장진호와 비슷하다. 호수의 물을 동문거리(東門巨里)에 있는 취수구를 거쳐 낭림산맥을 뚫은 도수 터널로 독로강(禿魯江) 계곡으로 인수하여 강계(江界) ·독로 두 발전소를 가동시킨다.[2]
- 장진호는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면·중남면·서한면에 걸쳐 있는 호수이다. 황초령(黃草嶺, 1200m)·마대산(馬垈山, 1,745m) 등지에서 발원하는 장진강을 하류 40㎞ 지점의 갈전리 협곡부에 중력식 콘크리트댐을 구축하여 조성하였다. 1934년에 완공되었으며, 만수면적 64㎢, 저수량 10억 5,900만 톤이다. 호수의 물을 황초령 중복에 뚫은 24㎞의 도수터널로 끌어 동해 사면을 흐르는 성천강(城川江)의 지류 흑림천(黑林川) 계곡으로 떨어뜨려서 장진강발전소를 가동시키고 있다. 장진강발전소는 낙차가 약 800m나 되는 제1발전소, 낙차 215m의 제2발전소, 낙차 93m의 제3발전소, 낙차 40m의 제4발전소 등의 차례로 가동된다. 이들 발전소는 1935년 5월에 착공하여 1938년 7월에 모두 완성하였다. 이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은 당시의 흥남·원산 등 공업지대에서 소비하였고, 154kV 특고압으로 서울 및 평양 등지로도 송전하였다. 이 댐을 건설하기 위하여 시멘트를 비롯한 많은 건설 자재와 인력이 필요하였으므로 함흥에서 오로리역을 거쳐 황초령을 넘어 사수리까지의 장진선 철도를 부설하였다. 특히 황초령을 넘기 위하여 높이 500m, 길이 약 7㎞의 강색(鋼索 ; incline)철도를 건설하였다. 장진호의 건설로 국도가 수몰됨으로써 장진군 장진면 하갈(下碣)에서 갈전리까지 발동선을 이용하여 연결되었다. 1941년에 갈전리에서 50㎞ 하류 지점인 이상리에 댐을 막아 제2장진호를 만들었다.
호수의 분류[편집]
- 호수(湖水)는 못이나 늪보다 넓고 깊게 육지가 오목하게 패여 물이 괴어 있는 자연지형을 말한다. 대부분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 분포하며, 대개 염도가 낮은 민물이다. 댐이나 저수지를 만들면서 이루어진 인공호수도 많다. 호수는 생성 원인에 따라 자연호수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호수가 있다.
- 자연호수로는 석호(潟湖)가 있다. 과거에는 만(灣), 바다가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곳이었다가 퇴적 작용 때문에 바다와 연결이 끊겨 호수가 된 곳을 말한다. 인공호수는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를 말한다. 댐이나 방조제 등으로 물길을 막거나 가두어 만든다. 오래전에는 농업용수 조달을 위해 만들었지만, 오늘날에는 수력 발전과 홍수조절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 한국은 지각 운동 및 화산 활동이 적고 또한 대륙붕에 덮인 일이 없으므로 자연호수의 발달이 적다. 주요 자연호수로는 광포와 백두산 천지를 비롯하여 요교호, 소동정호, 천아포, 강동호, 화진포, 경포 등이 있다. 한국은 자연호수보다 인공호수가 더 넓은 내수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발전용 및 다목적댐으로 수풍호(345㎢), 장진호(54㎢), 부전호(22 ㎢), 황수원호(24㎢), 소양호(70㎢), 대청호(73㎢), 안동호(52㎢), 충주호(96㎢), 파로호 (38㎢), 갈담호(26.5㎢) 등이 있으며 관개용으로 건설된 고삼저수지, 남양호, 아산호 등이 있다.
- 도시공원 내 인공호는 신도시 건설 시 인위적으로 조성된 경우가 많아서 인공적으로 물을 공급하여야 하므로 유지용수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공원 내 인공호수의 유지용수 확보 방안을 위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연구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며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수원에 대한 조사도 많이 부족하다. 유지용수의 목표 수질 선정 시 단순한 수질등급뿐만 아니라 생태계, 경관, 친수활동 측면 등이 인공호수의 이용 목적에 따라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대상지 주변 수원을 조사하고 유지용수의 유량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유지용수 취수로 인한 대상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야 한다.
장진호의 생태[편집]
- 함경남도 장진군의 중부에 있는 인공호수이다. 광복 전 장진강 상류를 막아 축조한 수력발전용 호수이다. 북쪽은 용호리, 서쪽은 유담리, 남쪽은 장진읍, 동쪽은 신흥리 4갈래로 뻗어 있고 군 내의 11리 읍 구가 호수에 면하고 있다. 둘레의 길이는 124km, 길이는 24.6km, 너비는 1.9km, 면적은 46.08km2이다. 호수는 북쪽과 서쪽, 남쪽으로 갈라진 좁고 긴 3개의 기본갈래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형태와 호안굴곡이 아주 복잡하다.
- 기슭의 경사는 심하지만 중심부의 기복은 단조롭다. 저질은 주로 모래와 감탕으로 되어 있다. 남쪽갈래와 북쪽갈래의 중심부에는 감탕이 쌓여 있고 기슭으로 나가면서 모래, 자갈, 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서쪽 갈래의 중심부에는 모래가 쌓여 있다. 호수로는 백암천(白岩川), 구읍리강(舊邑里江), 신대천(新大川) 등 장진강의 수십 개 지류들이 유입된다. 호수일대는 높은 산악지대로 되어 있으며 산림이 울창하여 수원함양조건이 좋다.
- 여기에는 잎갈나무, 자작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참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다. 장진호에는 물고기먹이가 될 수 있는 수십 종의 부유식물과 부유동물이 있다. 호수에는 자치, 열목어, 칠색송어, 붕어, 잉어, 메기 등 여러 가지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호수의 물은 전력생산과 함흥벌, 함주벌의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호수는 목재수송, 여객수송, 담수양어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름철에는 사수~갈전 간 여객선이 통과하며 겨울에는 빙상경기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호수의 남쪽끝에는 휴양소가 있다.
장진호의 유역환경[편집]
- 이 호수의 물을 동문거리에 있는 취수구를 거쳐 낭림산맥을 통과하는 도수터널로 끌어 독로강계곡에 두 개의 강계·독로발전소를 가동시킨다. 장진호와 같은 대규모 저수지는 불모지였던 부전고원(赴戰高原)의 잠재 자원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발전소는 수력뿐 아니라 관광, 삼림 및 지하자원 개발 등 토지 이용에 큰 활기를 가져왔으며, 이곳의 이용가치를 더욱 높였다.
- 장진호는 부전호와 함께 한반도 제1·제2의 인공호수로서 인근의 북수백산(北水白山, 2,522m)·차일봉(遮日峰, 2,506m)·두운봉(頭雲峰, 2,487m)·백산(白山, 2,379m)을 포함한 부전고원의 명승 관광자원이다. 황초령을 강색철도로 올라가면 황초령역에 이르며, 다시 장진선의 종점인 사수역에 이르게 된다.
- 이곳에서 호수를 정기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20㎞의 호수를 지날 때 펼쳐지는 산천의 풍경은 절경이다. 여름에는 석남화전(石楠花田)을 이루며 가을에는 온 산의 붉은 단풍이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어우러져 매우 풍경이 좋다. 갈전리에서 댐을 구경하고 호반의 산장에서 잠시 쉰 뒤 부전호로 가는 코스는 자연의 신비와 인공의 웅대함이 겸해진 경승지라 할 수 있다.
장진호 전투[편집]
-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 함경남도 장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함경남도 장진군 지역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중공군 제9병단에 속한 3개 군단 병력과 벌인 전투이다. 영어로는 '장진(長津)'의 일본어 독음인 '초신(ちょうしん)'을 가져와 초신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나 초신호 작전(Chosin Reservoir Campaign)이라고도 한다. 김일성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개마고원의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해갔던 유엔군이 1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에 포위되어 격전을 벌이다가 흥남으로 철수한 사건이다.
-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된 뒤 패퇴를 거듭하던 한국군과 미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전면적인 반격으로 전환했다.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으며,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그러자 김일성 정권은 산악지대인 평안북도 강계로 달아나 그곳을 임시수도로 정하고,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중국은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을 창설해 북한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전했다.
-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뒤 동부전선을 맡은 미 제10군단의 군단장 알몬드(Edward Mallory Almond) 중장은 부대를 세 방향으로 나누어 진격시켰다. 국군 제1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진격해서 10월 10일 함경남도 원산을 점령한 뒤 두만강 유역까지 계속 나아갔다. 11월 27일부터 시작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을 비롯한 유엔군은 1만 7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사망자 1,029명, 실종자 4,894명, 부상자 4,582명, 동상 등 비전투 요인에 의한 사상자 7,338명). 이러한 피해는 미군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어서 당시 언론들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진주만 피습 이후에 미군이 겪은 최악의 패전으로 평하기도 했다. 미국은 1996년부터 유해발굴단을 북한에 파견해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 한편 중공군도 장진호 전투에서 4만8천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다.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 숫자는 19,202명에 이르렀고, 동상 등의 비전투 요인으로 발생한 사상자 숫자도 28,954명이나 되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호수〉, 《위키백과》
- 〈장진호〉, 《위키백과》
- 〈호수〉, 《네이버국어사전》
- 〈장진호(長津湖)〉, 《두산백과》
- 정윤섭 기자, 〈장진호전투 사진 속 美 노병 "잊지 않고 기억해준 한국에 감사"〉, 《연합뉴스》, 2022-10-01
- 최현준 기자,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 비판했던 중국기자, 7개월형 선고〉, 《한겨레신문》, 2022-05-09
- 강대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는 어디일까?〉, 《뉴스포스트》, 2021-11-12
- 김준옥 기자, 〈장진호에 흐르는 '떼'(통나무 떼)〉, 《SPN 서울평양뉴스》, 2021-09-20
- 해양환경공단, 〈바다와 강이 만든 신비, 자연호수 ‘석호’〉, 《네이버블로그》, 2016-09-16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