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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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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평야

김제평야(金堤平野)는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정읍시·부안군·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 펼쳐진 평야이다.

개요[편집]

  • 김제평야는 전북 김제시를 중심으로 부안군 ·완주군 ·정읍시의 일부 지역에 펼쳐진 평야. 김만경(金萬頃)평야라고도 한다.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유역의 충적평야와 주변의 낮은 구릉성 침식평야로 이루어진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사질양토가 많아 벼농사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저수지 둑인 벽골제(碧骨堤) 등이 있을 정도로 일찍이 벼농사의 중심지였으며,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근대적 수리시설을 갖춘 지역이다. 평야 주변의 오래된 촌락들은 처음에는 구릉지에 터를 잡았으며, 하천변 충적지가 개발되면서 점차 평야 가운데로 괴촌(塊村) 형태의 촌락들이 들어섰다. 이와 같은 모습은 부안군 백산면(白山面), 김제시 죽산면(竹山面), 정읍시 신태인읍 부근의 동진강 유역에서 쉽게 눈에 띈다. 만경강 ·동진강 어귀와 계화도 일대는 대규모 간척사업에 의해 농경지로 되었고, 침식평야를 이룬 구릉지대는 과수 ·채소류 재배 및 닭 ·돼지 등의 가축사육이 성하다.[1]
  • 김제평야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발달된 충적평야와 그 주변의 넓은 야산지대를 중심으로 한 침식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이른바 '김만경평야(金萬頃平野)' 혹은 '김제만경평야'로 불리며,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밭작물은 초기에 보리, 밀, 호밀, 고구마 등이 재배되다가 고구마, 감자, 수박, 고추, 땅콩, 인삼, 무, 배추 등 구릉지 토양에 적합하고 농가소득을 올리는 경제성 작물로 바뀌었다. 구릉지 개간지는 논과 밭 이외에 과수원, 목장, 공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야 말단부인 진봉반도(進鳳半島)·만경강·동진강하구·계화도 일대는 간척사업에 의한 개발 첨단 지역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침식평야를 이루고 있는 야산지대는 과수원 및 피란민 정착촌·음성 나환자 정착촌 등이 들어서서 채소류 생산과 닭·돼지 등을 공장제 농업(工場制農業)을 통하여 대량 사육하고 있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산록에서 평야부로 점진적으로 개척되어 오다가 하천의 홍수와 범람에 대한 수방 대책이 수립되고, 대토목공사를 실시할 수 있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 및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사회의 도래에 따라 하천변의 충적지를 개발하게 되었다.[2]
  • 김제평야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평야이다. 김제평야는 호남평야의 중심이 되는 지역에 위치해 있어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주요한 수탈지가 되기도 하였다. 농업이 발달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김제 지역은 한국이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갖고 있던 1950년대까지는 잘 사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가 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업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어지면서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가 되었다. 김제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한국 사람들의 주식인 쌀과 보리 등 식량 작물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쌀 위주의 식량 자급이 가능해지면서 맥류 생산은 현격한 퇴조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전체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맥류 소비를 기피하게 된 것도 하나의 요인이지만, 농촌 인구의 감소에 따른 노동력 감소로 생산비가 증가한데다 맥류의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맥류의 재배 면적은 완만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반면, 잡곡이나 두류 및 특용 작물의 생산은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3]
  • 김제평야는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정읍시·부안군·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 펼쳐진 평야이다. 이 평야의 대부분은 본래 하천들의 자연제방과 배후습지 등이 발달해 있던 범람원 지역이다. 이 범람원의 퇴적층은 만경강 하구로부터 약 50㎞ 상류에 위치한 삼례읍까지에 걸쳐 기반암 위에 실트·점토층·사력층·실트·점토층·사층(砂層)의 순서로 퇴적층이 쌓여서 형성되어 있다. 충적지는 만경강과 동진강 및 소하천 주변에 발달한 하곡평야와 진봉반도를 중심으로 간척된 해안평야를 가리킨다. 해발고도가 5∼6m로 낮고 평평하며 한국 벼농사 지대의 핵심이다. 충적지와 연결된 구릉지는 부용천, 신평천, 두월천, 원평천 등 소하천의 분수계를 중심으로 넓게 발달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20m 내외로 사면의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기반암은 대보화강암이고 차별 침식에 의해 낮아진 것으로 여겨지고, 화강암 지역의 구릉지 토양은 '황토'로 불리는 적색토의 발달이 탁월하며 농경지로 개간하기에 쉽다.

김제평야의 생태환경[편집]

  • 김제평야의 대부분은 본래 하천들의 자연제방과 배후습지 등이 발달해 있던 범람원 지역이다. 이 범람원의 퇴적층은 만경강 하구로부터 약 50㎞ 상류에 위치한 삼례읍까지에 걸쳐 기반암 위에 실트·점토층·사력층·실트·점토층·사층(砂層)의 순서로 퇴적층이 쌓여서 형성되어 있다. 충적지는 만경강과 동진강 및 소하천 주변에 발달한 하곡평야와 진봉반도를 중심으로 간척된 해안평야를 가리킨다. 해발고도가 5∼6m로 낮고 평평하며 한국 벼농사 지대의 핵심이다.
  • 충적지와 연결된 구릉지는 부용천, 신평천, 두월천, 원평천 등 소하천의 분수계를 중심으로 넓게 발달되어 있다. 해발고도가 20m 내외로 사면의 경사가 매우 완만하다. 기반암은 대보화강암이고 차별침식에 의해 낮아진 것으로 여겨지고, 화강암지역의 구릉지 토양은 '황토'로 불리는 적색토의 발달이 탁월하며 농경지로 개간하기에 쉽다. 하천의 운반퇴적작용으로 이루어진 충적평야가 대부분이므로 사질양토가 많아 보수력이 크기 때문에 미작 농업에 매우 유리하다. 원래는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야산 지대나 평야부 주변의 산록에서부터 개척되어 나갔다.
  • 구릉지는 홍수가 없고 식수를 얻기 편리한 지역이기 때문에 취락이 형성되었다. 일제강점시대에는 취락 주변 구릉지는 대부분 임야로 사용되었고, 소나무가 많았다. 구릉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호남야산재개발사업'이 실시되면서부터였다. 구릉지 개간 초기에는 뽕밭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었고, 1980년대 이후 지하수 개발로 관정이 설치되면서 수리안전답으로 바뀌고 밭이 많이 늘었다. 구릉지 개발은 1980년대까지 이뤄졌고 1990년대 들어서는 구릉지 개간지의 재개발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1994년 극심한 가뭄으로 피해 받은 백산면과 공덕면의 구릉지대에 1995년 백산 양수장과 호남용수로 등 수리시설이 설치되어 구릉지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 김제평야지대는 비옥한 미작지역으로 국내 유수의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한말 이후 일제의 통감부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일인들에 의한 토지 투자와 그 뒤 산미증산정책에 의한 미곡 수탈 지역으로 전락하여 일인에 의한 대단위 개발 공사와 수리 사업 및 농장 경영이 이루어지던 지역이다. 태인은 오랜 고을이나 호남선 개통과 함께 본격적으로 개발된 김제·신태인 등 요역을 통하여 이 평야지대의 미곡이 반출되었고, 이 고장에서는 최초로 군산과 김제를 잇는 미곡 반출용 시멘트 도로가 설치되었다. 이 평야지대의 중심인 김제·신태인·화호·만경 등지에는 일본인의 농장과 정미소·미곡창고 등이 밀집되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김제평야의 지형특징[편집]

  • 만경강과 동진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호남평야는 충적 평야와 침식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평야는 하구에서 의 중상류로 갈수록 높아져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 및 하구 지대에 발달한 호남평야의 경우 10~30m에서 40m 사이에서 침식 평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침식 평야는 해발고도 40m 이상인 잔류 구릉 주변에 분포하여 식박 평원으로 추정된다. 김제시에도 이들 두 유형의 평야가 널리 분포해 있는데, 하천의 감조 구간에 해당하는 하류부에 위치하여 대체로 해발고도 10m 이하에서는 충적 평야가, 10m에서 40m까지는 침식 평야가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는 충적 평야는 보통 '뜰'이라고 불리고, 침식 평야는 '야산'이나 '고라실' 등으로 불린다.
  • 김제시의 경우 10m 이하의 충적 평야는 원평천·두월천·신평천 유역에 나타나며, 나머지 지역에서는 10m에서 40m 사이의 침식 평야가 넓게 나타난다. 충적 평야는 하곡 충적 평야와 해안 충적 평야로 나뉜다. 하곡 충적 평야는 큰물이 질 때 강둑을 넘는 강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퇴적 지형으로, 범람원이라고 한다. 범람원은 자연 제방과 배후 습지로 이루어진다. 하곡 충적 평야는 약 1만 년 전의 한랭기(북서유럽이나 북미 북동부에서의 빙기에 해당함)에 깊이 파인 골짜기가 1만 년 이래의 후빙기 때 해면 상승과 더불어 하천의 토사로 메워진 것이다. 이러한 충적지는 현재의 해면을 기준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해발고도가 극히 낮은 것이 특징으로, 일반적으로 고도는 5m 내외이며, 높은 경우에도 10m를 크게 웃돌지 않는다.
  • 만경강 연안은 해발고도 5m 내외의 평야 지대지만, 그 하도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현재의 지표면에서 약 20m 깊이에 폭 5㎞의 골짜기가 땅속에 남아 있다. 이는 현재의 해수준에서 15m 깊이에 있는 골짜기이므로, 현재의 만경강이 침식하여 만든 골짜기는 아니다. 강은 해수면이 그 침식의 기준면이 되어서 그보다 낮은 깊이까지는 침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땅속의 골짜기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았던 빙기에 그 낮은 해수면을 침식 기준면으로 하여 당시의 만경강이 판 침식곡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서 7만 년 전 마지막 빙기의 최성기는 1만 8천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해수준이 지금보다 140m 낮은 수준이었다. 이런 빙기의 침식곡이 후빙기의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준의 상승으로 퇴적물로 메워진 것이 하곡 충적 평야이다. 김제시의 하곡 충적 평야는 만경강과 동진강을 비롯하여 원평천, 두월천, 신평천 연안 등에 분포한다. 해안 퇴적 평야는 진봉반도와 동진강 하구 사이에 있는 죽산면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밀물 때는 물에 잠기나, 썰물 때는 노출되는 간석지였는데, 간척 사업으로 안전한 농경지가 되었다.

김제평야의 명칭 유래[편집]

  • 김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 백제시대에는 벽골군으로 불렸다. 이는 벼의 고을이란 뜻으로, 한국에서 제일 먼저 '벽골제'라는 저수지가 만들어져 벼농사의 신기원을 이룩한 곳이기도 하다.
  •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지방 조직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꿔 주·군·현 체제를 강화하면서 이름 역시 모두 한자명(漢字名)으로 고쳤는데, 이에 따라 '벽골'은 '김제'로 바꾸었다. 이는 '금의 언덕' 또는 '황금의 벌판(들)'이란 뜻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도 김제시 일대의 평야를 '대평, 속칭 김제만경평야라고 한다(大坪俗稱金堤萬頃坪)'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큰들'을 표현한 것이다.
  • 김제시의 큰들로는 만경강과 그 지류의 주변이나 하구에 분포한 용지들, 부용들, 동계들, 백구들, 저산들, 청하들, 만경들과 같은 넓은 들을 비롯하여 봉산들, 봉남들, 월촌들, 남포들, 돔배들 등이 있다. 이들을 통칭하여 김제평야라고 부른다.

한국의 평야[편집]

  • 한국의 평야(平野)는 주로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 해안, 큰 강의 하류 지역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고, 평야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던 중 상공업이 성행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평야 지대의 농촌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논과 강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북쪽의 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남향의 산기슭은 햇볕을 잘 받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물이나 시냇물은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하다.
  • 평야 지역의 농촌에서는 물을 대기 쉬우면 논으로 이용하며, 홍수 때 물에 잠기던 곳을 둑으로 막고 수문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바닷물을 막아 물을 빼내고 논으로 만드는가 하면 경사진 곳은 층층이 논두렁을 쌓아 논밭으로 개간하기도 하며,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로서 갈수록 현대화가 추진, 발전되고 있다. 또한 물이 많지 않은 곳에는 밭을 일구어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작물과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한다.[4]
  • 한국의 평야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인 한국방향(남북방향)의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이 한반도의 동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야도 연속적으로 광대하게 발달되어 있지 않고, 태백산맥과 낭림산맥에서 분기해 남서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국방향과 랴오둥(遼東) 방향의 산맥들에 의해 소규모 평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평야 중 비교적 규모가 큰 평야로는 김제평야ㆍ만경평야ㆍ나주평야ㆍ김해평야ㆍ논산평야ㆍ예당평야ㆍ평택평야ㆍ김포평야ㆍ재령평야ㆍ평양평야ㆍ안주평야ㆍ용천평야 등을 들 수 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김제평야(金堤平野)〉, 《두산백과》
  2. 김제평야(金堤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김제평야〉, 《향토문화전자대전》
  4. 한국의 평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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