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
호남평야(湖南平野)는 전라북도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한국 최대의 평야이다.
개요
- 호남평야는 전라북도 서부에 있는 한반도 최대의 평야로, 하천의 하류에 토사가 퇴적되어 만들어지는 충적평야에 해당한다. 전라북도 군산시, 익산시, 김제시, 전주시, 완주군, 부안군, 정읍시, 고창군, 충청남도 논산시 일부, 부여군 일부, 서천군 일부가 포함된다. 면적은 약 3,500km², 동서 50㎞, 남북 80㎞에 달한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동진강 하류는 김제평야, 만경강 하류는 만경평야, 논산천 합류부 일대는 논산평야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고,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합쳐서 금만평야(金萬平野)라고 하기도 한다. 현재 호남평야의 서쪽에 지어지고 있는 신도시인 새만금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면적은 3,500㎢에 달하며, 전라북도 안에서만 봐도 호남평야가 전북의 1/3을 차지한다. 기타 용지를 제외하고 경지 면적만 봤을 때, 호남평야의 경지 면적은 1,992㎢이고, 한반도 제2의 평야인 재령평야의 경지면적이 1,350㎢라고 하므로 호남평야가 압도적으로 큰 것이다.[1]
- 호남평야는 호남평야(湖南平野)는 한국 호남지방의 평야로, 면적은 3,500km²이다. 호남지방은 대체로 전주와 광주를 연결하는 선을 기준으로 볼 때 서쪽은 저평하여 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노령산맥에 의하여 두 평야, 곧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로 갈라진다. 그중 호남평야는 노령산맥의 서쪽 금강·만경강·동진강 유역을 차지하며, 동서 약 50km, 남북 약 80km의 평야인데, 한국 유수의 쌀 생산지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북부의 금강 하류에 속하는 부분은 극히 좁으며 거의 대부분이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속한다. 흔히 동진강 유역의 평야를 김제평야, 만경강 유역의 평야를 만경평야라 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서해안에는 약 6m의 조차가 있어 조석평야(潮汐平野)가 상당히 널리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수전(水田) 개발에 따라 간척사업과 인공적 평탄화에 의하여 정지(整地)된 일망천리의 수전지대는 운적토로 얇게 덮이어 전체가 충적평야 같이 보인다. 군데군데 나타나 있는 구릉은 기반암의 잔구(殘丘)이며 이것은 과거에 준평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안의 변산반도(邊山半島)에서 고창에 걸친 일대의 화강편마암지는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고 또 동부 산지에 가까운 지방에도 구릉지가 많다. [2]
- 호남평야는 전북의 서반부를 차지하는 평야. 전북평야 또는 전주평야라고도 한다. 한국 최대의 평야로서, 주로 만경강(萬頃江) ·동진강(東津江) 유역에 펼쳐져 있으며 전주 ·익산 ·정읍 ·군산 ·김제 5개 시를 비롯하여 완주 ·부안 ·고창 등의 군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파랑상(波浪狀)의 준평원과 강 유역의 충적지, 서해안 지역에 발달한 조석(潮汐)평야 등으로 이루어진 저위성(低位性) 평원인데 평야부인 익산시 ·부안군 일대의 지하 1m에 토탄이 부존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에는 호남평야의 대부분이 삼림이나 잡초로 덮여 있었던 것 같다. 저위성 평원이므로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들도 평야부에서는 느린 속도로 곡류한다. 수자원 개발사업은 백제시대부터 시행되었으며 벽골제(碧骨堤:김제) ·눌제(訥堤:정읍) ·황등제(黃登堤:익산) 등의 축조를 효시로 한다. 임실군 운암(雲岩)에는 댐이 조성되어 그 물이 호남평야의 남부를 관개하고, 만경강의 지류 고산천(高山川)의 상류에도 대아리(大雅里) 저수지가 만들어져서 이 물이 북부권의 관개를 원활하게 한다. 더욱이 경지정리 ·용배수로(用排水路) 정비 등을 통하여 호남평야는 전북 곡창으로서의 면모를 새로이 하고 있는데 계화도(界火島)를 중심으로 한 대단위 농업개발사업 추진으로 평야는 계속 늘고 있다. 농산물은 벼가 주종이며 보리 ·감자 ·채소 ·생강 ·잎담배 등의 밭작물도 많이 나고, 닥나무 ·모시풀 등이 산출되며, 복숭아 ·배 ·감 등의 과수 원예도 활발하다.[3]
호남평야의 지리
- 동쪽과 남쪽은 노령산맥(蘆嶺山脈), 북쪽은 금강(錦江), 서쪽은 황해와 접한다. 동서의 폭이 약 50㎞, 남북의 길이가 약 80㎞에 이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전주·익산·군산·정읍·김제 등 5개 시와 부안·완주·고창 등 3개 군이 포함된다. 흔히 동진강(東津江) 유역에 펼쳐진 평야를 김제평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펼쳐진 평야를 만경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전라북도 총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남평야는 경관상으로 매우 평탄하고 단조로우나 지형의 구성은 복잡하다. 즉, 평야는 침식·하성(河成)·해성(海成) 등 복합적 요인으로 형성되었다. 호남평야의 지질은 대부분이 침식에 약한 쥐라기의 대보화강암(大寶花崗岩)과 편상화강암(片狀花崗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오랫동안 침식을 받아 해수면 높이의 파랑상(波浪狀) 지형을 이루며, 제4기의 충적지(沖積地)는 부용천(芙蓉川)·동진강·만경강 연변에 넓게 분포한다. 한편 군산시 일대에는 간석지(干潟地)를 간척한 평야가 광대하게 전개된다.
- 만경강 유역과 동진강 하류의 충적평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해발고도 30m 내외의 전형적인 준평원(準平原)을 이룬다. 호남평야는 노년기 말기의 지형에 가깝고, 중국의 요동반도에서 서해안 주변으로 연속하여 발달한 광대한 준평원의 일부로 볼 수 있다. 호남평야에 낮은 구릉이 넓게 산재하고 있는 것은 화강암 산지가 해수면 수준까지 침식된 후, 기반암인 화강암이 퇴적층 사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북쪽은 한반도의 4대 강이라 일컫는 금강이 흐르며, 호남평야의 북쪽 일부는 충청남도에 걸쳐 있기도 하다. 그리고 만경강과 동진강처럼 큰 강들이 호남평야를 적시며 호남평야의 서쪽에 있는 황해로 나아간다. 남쪽에는 노령산맥 너머로 또한 큰 평야인 나주평야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평야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황해는 수심이 그리 깊지 않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또한 큰 강들이 꾸준히 토사를 운반하는지라 호남평야의 서쪽 해안 지형에는 갯벌이 발달하였다.
- 금강, 만경강, 동진강 등의 하천이 흐르지만 이 넓은 평야를 관개하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벽골제, 눌제, 황등제 등의 저수지가 축조되어 물을 공급했다. 호남평야가 속한 김제시는 전국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사실상 지평선을 지역 명물로 내세우는 곳은 김제가 유일하다.
- 빙하기 때에는 해수면이 낮아서 황해가 육지였기 때문에 한반도와 중국은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호남평야는 현재 바다로 인해 중국과는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지질적으로만 본다면 중국 동해안의 대평원과 이어져 있는 셈이다. 빙하기가 끝나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호남평야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당시의 해안선은 전주 코앞까지 들어차기도 했었고, 아주 먼 옛날부터 꾸준한 개척을 하며 농지로 바뀌었다. 현재 해안선은 과거에 비해 굉장히 전진한 상태이다. 자연적으로 퇴적·침식된 지형은 하천에 의해 퇴적된 지형과 바다에 의해 퇴적된 지형으로 또 나뉜다. 내륙부에서는 퇴적과 침식이 복함적으로 나타나는데, 하천에 의해 퇴적되고 또 침식되는 과정을 거쳐 평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또, 호남평야 곳곳에 있는 낮은 구릉지들은 원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였는데, 계속해서 침식되어 낮아진 결과 평야를 이루게 되었다. 즉, 호남평야가 다 그냥 평평한 땅이더라도 지대마다 지질이 화강암이냐, 퇴적토냐 하는 것이 다 다르다. 해안에서는 바다에 의해 퇴적된 갯벌 위로 농지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인위적, 혹은 자연적 작용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호남평야의 생태환경
- 전라북도 총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호남평야는 경관상으로 매우 평탄하고 단조로우나 지형의 구성은 복잡하다. 즉, 평야는 침식·하성(河成)·해성(海成) 등 복합적 요인으로 형성되었다. 동진강은 정읍시의 풍방산(豊方山)에서 발원하여 노령산맥을 횡단하고, 신태인읍에서 북서류하여 황해로 유입한다. 이 하천은 호남평야 남부의 관개에 이용되고 있다. 호남평야 남부는 섬진강댐의 물을 유역변경식으로 받게 되어 관개용수가 더욱 풍부해졌다. 이들 하천은 넓은 호남평야에 비하여 규모가 작아서 전 지역을 관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벽골제(碧骨堤, 김제)·눌제(訥堤, 정읍)·황등제(黃登堤, 익산) 등의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특히 벽골제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로 330년(비류왕 27)에 축조되었고,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수축(修築)되었다.
- 벽골제의 제방은 김제시 부량면 포교리를 기점으로 월승리까지 남북으로 일직선을 이루는데, 현재는 약 3㎞의 제방과 수문지(水門址)임을 알려주는 3쌍의 거대한 석주(石柱)만이 남아 있다. 1925년에 있었던 간선수로(幹線水路) 공사로 인하여 벽골제의 원형은 크게 손상되었다. 해방 전 호남평야의 농경지는 일제의 토지회사와 자본가들이 점유하였고,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는 조선인의 농경지를 착취하였다. 해방 후의 대표적인 간척사업으로는 1963년에 시작되어 1979년에 완공된 계화도지구(界火島地區)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을 들 수 있다.
- 계화도는 원래 부안군 행안면 계화리에 속하는 면적 2.48㎢의 작은 섬으로 근해 수산업의 기지였다. 부안군 동진면 조포리에서 계화도까지 길이 9,254m의 제1호 방조제와 부안군 하서면 돈지리에서 계화도까지 길이 3,556m의 제2호 방조제를 축조하여 조성한 경지는 약 4,600㏊였다. 여기에 정읍 칠보발전소의 방류수(放流水)를 농업용수로 끌어들이는 길이 67㎞의 도수로(導水路)와 이 물을 저수하기 위한 청호지(晴湖池)가 건설되었다.
- 호남평야의 경지 면적은 약 18만 5000㏊로서 전라북도 총 경지면적의 약 72%를 차지한다. 한국 최대의 곡창인 이 지역의 농업은 미맥(米麥) 중심의 주곡에 편중되어 있어 논이 전체 경지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완주·김제·익산 등의 구릉지에서는 과수와 원예농업이 활발하고, 고창·부안 일대에서는 담배가 많이 생산된다. 또한 고창·정읍·신태인 등에서는 저마(苧麻)의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며, 전주시와 완주군 이서면 일대 및 고창군에서는 낙농이 활발하다. 농산물은 쌀·보리가 주산물이며 쌀은 연평균 약 40만 톤, 보리는 약 19만 톤이 생산되고 있다. 그 밖에 과수, 원예, 면화, 담배, 저마 재배가 활발하다. 내장산국립공원의 내장사, 백양사 등의 고찰과 굴거리나무, 비자나무 군락 등 천연기념물이 유명하다.
한국의 평야
- 한국의 평야(平野)는 주로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 해안, 큰 강의 하류 지역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고, 평야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던 중 상공업이 성행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평야 지대의 농촌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논과 강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북쪽의 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남향의 산기슭은 햇볕을 잘 받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물이나 시냇물은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하다.
- 평야 지역의 농촌에서는 물을 대기 쉬우면 논으로 이용하며, 홍수 때 물에 잠기던 곳을 둑으로 막고 수문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바닷물을 막아 물을 빼내고 논으로 만드는가 하면 경사진 곳은 층층이 논두렁을 쌓아 논밭으로 개간하기도 하며,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로서 갈수록 현대화가 추진, 발전되고 있다. 또한 물이 많지 않은 곳에는 밭을 일구어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작물과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한다.[4]
동영상
각주
- ↑ 〈호남평야〉, 《나무위키》
- ↑ 〈호남평야 (湖南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호남평야 (湖南平野)〉, 《두산백과》
- ↑ 〈한국의 평야〉, 《위키백과》
참고자료
- 〈평야〉, 《나무위키》
- 〈평야〉, 《위키백과》
- 〈호남평야〉, 《나무위키》
- 〈호남평야〉, 《위키백과》
- 〈한국의 평야〉, 《위키백과》
- 〈호남평야 (湖南平野)〉, 《두산백과》
- 〈평야(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호남평야 (湖南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썩어도준치, 〈지형답사(36)...호남평야〉, 《네이버블로그》, 2016-06-26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