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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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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

남태령(南泰嶺)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서초구 방배동과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 사이에 있는 고개이며 그 해발고도는 183m이다.

개요[편집]

  • 남태령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南峴洞)과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冠門洞)을 잇는 고개이며 그 길이 6㎞이다. 관악산(冠岳山)과 우면산(牛眠山) 사이에 있다. 예부터 서울과 수원을 잇는 도로로 이용되었다. 18세기 말 정조(正祖)가 수원에 있는 장헌세자(藏獻世子)의 능을 참배하러 다닐 때 지나던 길이다. 정조가 이 고개를 넘을 때 고개 이름을 묻자 신하들이 남태령이라고 답하자 그 후부터 남태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남태령은 서울 관악구 남현동과 과천시 관문동을 잇는 큰 도로이지만 옛날에는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일제강점기 때 길을 넓히면서 서울 쪽 반절은 사라졌고 과천 쪽 일부는 그대로 남아 있다. 최근 과천시가 이곳에 남태령 옛길을 복원시켰다. 옛길은 과천시 관문 사거리에서 서울 쪽 오른편에 현재의 남태령 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좁은 길이다. 1㎞도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옆으로 작은 [[계곡]이 있고 주변에 이 우거져 있다. 도로와 만나는 입구에는 남태령 옛길 표지석을 세웠다. 지하철 4호선과 서울에서 안양·의왕·군포·수원까지 가는 버스가 지난다.[1]
  • 남태령은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남현동에 위치한 고개이다. 과천시의 과천동과 서울특별시의 사당역 사이에 있는 큰 고개로 관악산의 북동쪽 능선을 넘는다.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금의 동작대로 왼쪽 우면산 쪽의 산길이었다. 지명 유래에 관한 여러 추측이 있다. 정조가 화성 융릉(隆陵)으로 가는 길에 과천현 이방(吏房) 변씨에게 고개이름을 물었다. 그는 이 고개가 본디 여우고개였으나, 요망스러운 이름임에 삼남대로 상에서 첫 번째로 맞이하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 대답하였다. 그 이후부터 이 고개를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관악산을 넘나드는 천년 묵은 여우가 많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전해져서 호현(狐峴) 또는 엽시현(葉屍峴)이라고 불렀다. 조선 정조 이전부터 이미 남태령으로 불리고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해동지도』, 「과천현지도」에는 현재의 남태령이 호현으로 표시되어 있다. 『광여도』 과천현에서 관음사(觀音寺) 아래 고개를 호현이라고 쓴 것이 확인된다. 김정호의 『여도비지』와 『대동지지』 및 『동여도』, 『대동여지도』에도 남태령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 『과천지도』에서 남태령 지명과 함께 험준한 산세가 묘사되어 있다. 남태령을 지나 삼남대로를 통해 한강을 건너 한성으로 들어가는 길도 파악할 수 있다. 『일성록』에는 조선 정조 연간에 남태령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2]
  • 남태령은 관악구 남현동에서 과천시 과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여우고개 · 여시고개 · 야시고개 · 호현 · 엽시현 · 남현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렀다. 여우고개라 한 것은 수목이 울창하고 후미진 곳이 많아 관악산을 넘나드는 여우가 많이 나타났다고 하며, 또 여우굴이 있었고 이곳에 천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하여 소의 탈을 만들어 사람에게 씌워서 소로 만들어 부리다가, 무를 먹고 탈을 벗게 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여시 · 야시는 여우의 사투리이며 엽시현은 여시고개를 한자 음으로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 남태령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지금은 남태령에 넓은 대로가 개통되어 자동차의 통행이 빈번한 도로가 통과한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산길을 넘어 한양과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동했다. 과거 남태령 구간에는 도적이 많아 50명 이상의 행인이 모인 다음 관군의 호송을 받아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남태령을 넘어 서울특별시의 사당동, 동작동을 지나 노량진의 노량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이동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사당역과 과천 사이에 있는 고개로 잘 알려져 있다. 관악산의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 우면산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있는 고개로, 정상부의 해발고도는 183m이다. 남태령은 고개 높이로만 보면 한국에서 그리 높지 않지만, 서울 주변에서는 높고 큰 고개이다. 남태령은 예로부터 한양과 남부지방을 이동하던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던 고개이다. 18세기 말에는 정조가 수원에 있는 장헌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다닐 때 지나다녔으며, 현륭원을 오갈 때 이용하기도 했다.

남태령의 역사[편집]

  • 고개는 산으로 가로막힌 두 지역을 넘어가는 길목으로, 두 지역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이다.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필요성에 의해 고개가 생겨났다. 한국의 지명 중에서 고개를 나타내는 말로 고유어에는 고개, 재가 있고 한자어로는 령(嶺), 현(峴), 치(峙) 등이 있다. 고개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험준한 산악지대의 고개는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 가능하다. 또한, 산악지형의 국경지대의 경우 고개에 국경 검문소나, 세관 등을 설치해 운용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토목 공사를 통해 터널을 건설하거나, 산을 일부 깎아내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과거보다 좀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있다.[3]
  •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충청, 전라, 경상)으로 통하는 주요 도보길이었다. 옛부터 한양에서 삼남 지방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로로 기능했다. 일제강점기에 현 47번 국도와 39번 국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강대교~남태령~군포~남양간 신작로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8년 영등포-수원간 1번 국도가 먼저 포장되고 1968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 구간 개통, 1973년 경수대로 왕복 4차로 확장 개통으로 이어지면서 도로 확충이 늦었던 남태령은 한때 쇠락하기도 했다.
  • 폭주하는 서울-수원 간의 교통량 분산과 안양시 개발의 촉진을 위해 1976년 남태령~호계사거리 간 395번 지방도가 왕복 4차로로 개통되면서 다시 남태령은 수도권의 중추 간선도로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 395번 지방도는 5년 뒤 1981년에 47번 국도로 승격하였으며, 47번 국도 연선에 위치한 과천시, 안양시, 군포시, 안산시 등의 급격한 성장에 힘입어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남태령은 이미 교통량 포화로 극심한 정체를 겪게 되었다.
  • 옛날 이름은 여우고개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우고개로 통하기도 한다. 남태령이라는 이름은 조선 왕조 때 정조가 사도세자 묘소를 참배하러 궁 밖으로 나갔을 때 관료들에게 이 고개이름이 뭐냐고 묻자 당시 과천현 이방이었던 변 씨가 남쪽의 큰 고갯길이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고 붙여주었다는 데서 기인한다. 원래의 고개 이름을 알고 있던 신하가 왜 전하께 거짓말을 하느냐고 꾸짖자 변씨 曰, "감히 주상 전하께 여우고개 같은 요망한 말을 올릴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관악구,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 좌우로 관악구과 서초구로 나뉘어 또 다른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인근에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수도방위사령부, 국군수송사령부, 국군지휘통신사령부 본부들이 있다. 사실상 서울과 과천 사이를 빠르게 직통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길목으로, 1984년 당시 서울 창경원이 과천으로 이전하여 서울대공원이 생기면서 대공원으로 가는 길목으로 알려져 매년 어린이날이 되면 길이 막히게 되는 사례도 있었다.[4]

남태령 옛길[편집]

  •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동할 때에 관문 역할을 하던 길인 한양관문길은 남태령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에 이용되었던 남태령 옛길 표지석은 과천에서 서울 방향으로 남태령의 정상부에 도달하기 전 도로 우측에 세워져 있다. 이 길을 지나 수원과 안성을 거쳐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반대로 과천에서 이 고개를 넘어 사당동·동작동·흑석동을 지나 노량진의 노량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들어섰다.
  • 남태령 옛길의 구간은 서울 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에서 산길을 따라 남태령 옛길 표지석이 있는 구간까지는 비포장의 형태로 옛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과천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과천시의 관문사거리에서 중앙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과천성당을 만나게 된다.
  • 과천성당에서부터는 다시 옛길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과천성당을 지나 관악산을 끼고 있는 관악산길을 따라 이동하면 온온사(穩穩舍)를 만난다. 온온사는 정조 임금이 화성으로 능행시에 잠시 묵어간 곳이기도 하다. 1650년에 축조되어 경기유형문화재 제100호인 온온사는 조선 시대에 왕들이 쉬어가던 객사이다.

명칭이 여우고개에서 남태령이 된 사연[편집]

  • 남태령은 과천시 관문체육공원을 지나 관문 사거리 쪽에서 서울 사당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원래는 여우고개라고 불리었으나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수원 현륭원으로 행차할 때에 이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이 고개의 이름을 물었더니 과천현 이방 변씨가 옆에 있다가 "남태령입니다.”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이때 "여우고개라는 예부터 전해오는 이름이 있는데 어찌 거짓 이름을 아뢰는 것이냐?"라고 옆에 있던 신하가 질책하니, "임금님께 여우고개라는 속된 이름을 아뢰기가 민망해서,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게 되면 첫 번째 나오는 큰 고개이기에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하므로 임금님께서는 변이방의 깊은 뜻과 즉흥적인 작명 실력을 높이 칭찬하고, 그 후부터 남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춘향전』의 내용 중에 이도령이 춘향을 찾아갈 때 "역졸을 거느리고 가만히 숭례문을 내달아 칠패·팔패·돌모루·백사장을 지나고 동작강 얼른 건너 남태령 뛰어넘어 과천천에 이르니......" 라고 과천향토사에 수록된 구절을 보면 남태령은 이몽룡의 춘향을 향한 사랑의 길이기도 하다.

남태령역(南泰嶺驛)[편집]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2동에 있는 지하철역이다. 서울지하철 4호선 사당역과 선바위역 사이에 있으며 당고개발 남태령행 막차의 시종착역이다. 1994년 4월 1일 개업했다. 역명은 남태령 고개가 인근에 있어 붙여졌다. 역 주변에 서울전자고등학교, 전원마을 등이 있다. 서울교통공사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2동 2909번지에 있다.
  • 남태령역은 한때는 서울시내 지하철역들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나 2011년에 신분당선이 개통하면서 청계산입구역이 가장 남쪽에 있는 역이 되었다. 선바위역 방면 터널에는 절연 구간이 나오기 전까지 4호선 전동차가 주박하거나 회차할 수 있는 회차선이 있다. 이 역은 철도청이 시공하였기 때문에 과거에는 역 등급이 있으나 2004년에 폐지되었다. 철도청 철도거리표를 참조해 보면 2003년까지만 해도 보통역이었으나 2004년부터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부터 당고개역까지 서울교통공사 구간이다. 이 역부터 당고개역을 지나서 진접역까지 우측 통행이다. 진접선으로 운행한 전동열차는 첫차 시간에만 남태령역에서부터 운행하고, 평시에는 사당역에서부터 운행한다.

남태령 3.1운동 만세 시위지[편집]

  • 사당으로 넘어가기 전 남태령 고개 정상에 올라서면 과천루가 세워져 있다. 과천루에 서면 좌우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감싸고 있는 과천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과천 8경 중 제5경 남령망루(南嶺望樓)는 '남태령 망루에서 바라보는 과천'을 말한다. 관문 사거리에서 사당방향에 있는 남태령 옛길로 올라가기 전 과천동 남태령 제3공원에는 과천에서 3.1운동을 하였던 이복래 독립운동가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 시위지의 표지판 크기가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과 얼에 비해 눈에 띄지 않게 작기는 하지만 적혀있는 내용을 보면 남태령 3.1운동 만세 시위지는 과천면 주민이었던 이복래 등이 주도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이라고 한다. 이복래는 본래 시흥 출신으로 시위 당시에는 과천면 하리에 살았으며, 그는 서울에서 3.1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인근 주민들에게 3월 30일 오후 8시까지 남태령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주민들이 모이자 그들에게 손수 제작한 태극기 15개를 나누어 주었고, 이복래와 주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함께 과천 읍내로 행진하여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공립보통학교 앞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남태령(南泰嶺)〉, 《두산백과》
  2. 남태령〉, 《위키백과》
  3. 고개〉, 《위키백과》
  4. 남태령〉,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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