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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반도'''는 계양동의 북부를 포함한다. [[한강]]이나 [[섬]]을 제외한, 한강과 염하, 경인 아라뱃길에 둘러싸인 면적은 약 313.4km2이다. 통진 지역 서북부를 제외한 지역이 [[평야]]를 이룬다. 옛 통진군 지역만을 반도로 간주하여 통진반도로 구별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김포군 (검단 포함)과 통진군으로 되어 있었다. 김포시내와 검단을 합쳐 '검포'라고 불린 적도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김포반도의 전역과 양천군(오늘날의 양천구와 강서구)가 김포군으로 통합되었다. 1963년에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계양면도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89년 1월 1일 계양면이, 1995년 1월 1일 검단면이 인천에 편입되었다. 이명박 정부시기 경인 아라뱃길을 건설하면서 김포시와 아라뱃길 이북의 계양구, 검단의 아라뱃길 이북 지역은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지역이 되었고, 그래서 '김포섬'이라는 섬으로 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반도다. 결정적으로 섬의 정의에도 어긋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8F%AC%EB%B0%98%EB%8F%84  김포반도]〉, 《위키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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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반도'''는 [[계양동]]의 북부를 포함한다. [[한강]]이나 [[섬]]을 제외한, 한강과 염하, 경인 아라뱃길에 둘러싸인 면적은 약 313.4km2이다. 통진 지역 서북부를 제외한 지역이 [[평야]]를 이룬다. 옛 통진군 지역만을 반도로 간주하여 통진반도로 구별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김포군 (검단 포함)과 통진군으로 되어 있었다. 김포시내와 검단을 합쳐 '검포'라고 불린 적도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김포반도의 전역과 양천군(오늘날의 양천구와 강서구)가 김포군으로 통합되었다. 1963년에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계양면도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89년 1월 1일 계양면이, 1995년 1월 1일 검단면이 인천에 편입되었다. 이명박 정부시기 경인 아라뱃길을 건설하면서 김포시와 아라뱃길 이북의 계양구, 검단의 아라뱃길 이북 지역은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지역이 되었고, 그래서 '김포섬'이라는 섬으로 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반도다. 결정적으로 섬의 정의에도 어긋난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8F%AC%EB%B0%98%EB%8F%84  김포반도]〉, 《위키백과》</ref>
  
 
==반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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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반도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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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경기도 김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 하류인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김포지구 전투'라고도 한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활약으로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한 북한군 제6사단의 진격을 지연시켜 국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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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경기도 김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 하류인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김포지구 전투'라고도 한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활약으로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한 북한군 제6사단의 진격을 지연시켜 국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김포반도 북단 지역은 유속이 빠르고 강폭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북한군은 김포반도 북단의 월곶면과 하성면 지역으로 강을 건너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며, 국군은 문수산 등의 하안 고지에 참호를 파고 진지를 쌓아 북한군의 진출을 막으려 했다. 북한군의 일부 부대가 강을 건너 김포반도에 상륙했으며, 강녕포(康寧浦)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하를 시도했다. 국군은 포격 등으로 북한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 때문에 1950년 6월 27일 오전까지 북한군 제6사단의 병력 대부분이 강을 건너왔고, 국군은 통진으로 물러났다. 국군은 운유산과 천마산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김포읍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김포읍과 양곡 방면으로 퇴각해야 했다.
 
*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김포반도 북단 지역은 유속이 빠르고 강폭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북한군은 김포반도 북단의 월곶면과 하성면 지역으로 강을 건너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며, 국군은 문수산 등의 하안 고지에 참호를 파고 진지를 쌓아 북한군의 진출을 막으려 했다. 북한군의 일부 부대가 강을 건너 김포반도에 상륙했으며, 강녕포(康寧浦)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하를 시도했다. 국군은 포격 등으로 북한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 때문에 1950년 6월 27일 오전까지 북한군 제6사단의 병력 대부분이 강을 건너왔고, 국군은 통진으로 물러났다. 국군은 운유산과 천마산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김포읍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김포읍과 양곡 방면으로 퇴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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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평야==
 
==김포평야==
* 김포평야는 한강 하류의 서안에 펼쳐진 [[평야]]이며 해발고도 300m이다. 경기 파주시·고양시·김포시에 걸친 평야. 김포시 일대 평야의 기반암은 호상편마암으로 이루어지고, 남부 일대만 엷은 퇴적층으로 덮여 있다. 김포시 북서부의 문수산(文殊山:376m) 일대의 구릉은 김포평야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구릉지를 이룬다. [[고양시]]의 한강변은 대부분 충적층으로 덮여 있으며, 해발고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항상 침수의 위험을 안고 있다. 토양은 비옥하여 주요 쌀 경작지대를 이루며, 김포쌀은 질이 좋아 예로부터 통진미(通津米)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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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평야]]는 [[한강]] 하류의 서안에 펼쳐진 [[평야]]이며 해발고도 300m이다. 김포평야는 경기도 [[파주시]], [[고양시]], [[김포시]]에 걸친 [[평야]]이다. 김포시 일대 평야의 기반암은 호상편마암으로 이루어지고, 남부 일대만 엷은 [[퇴적층]]으로 덮여 있다. 김포시 북서부의 [[문수산]](文殊山:376m) 일대의 [[구릉]]은 김포평야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구릉지]]를 이룬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강변]]은 대부분 [[충적층]]으로 덮여 있으며, [[해발고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항상 [[침수]]의 위험을 안고 있다. [[토양]]은 비옥하여 주요 [[]] 경작지대를 이루며, 김포쌀은 질이 좋아 예로부터 통진미(通津米)로 알려졌다.  
  
* 김포평야는 굴포천과 한강 하류 남안에 형성된 퇴적평야로, 김포시를 중심으로 인천, 부천, 서울에 걸쳐 발달해 있다. 통진평야라고도 한다. 핵심부는 하천이 범람하여 침수하는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은 기복이 작은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침수가 잦은 배후습지에는 일제강점기 초부터 인공제방이 축조되었다. 본래 밭으로 많이 이용되어 특히 통진미가 수랏상에 오르던 진상미라 하여 유명하였다. 현대에 들어 주거지가 들어서며 토지이용이 크게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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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평야는 굴포천과 한강 하류 남안에 형성된 [[퇴적평야]]로, 김포시를 중심으로 인천, 부천, 서울에 걸쳐 발달해 있다. 통진평야라고도 한다. 핵심부는 하천이 범람하여 침수하는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은 기복이 작은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침수가 잦은 배후습지에는 일제강점기 초부터 인공제방이 축조되었다. 본래 밭으로 많이 이용되어 특히 통진미가 수랏상에 오르던 진상미라 하여 유명하였다. 현대에 들어 주거지가 들어서며 토지이용이 크게 변화하였다.  
  
 
== 지도 ==
 
== 지도 ==

2023년 3월 30일 (목) 22:58 기준 최신판

김포반도(金浦半島)

김포반도(金浦半島)는 경기도 김포시와 인천광역시 검단 지역으로 이루어진 반도이다.

개요[편집]

  • 김포반도계양동의 북부를 포함한다. 한강이나 을 제외한, 한강과 염하, 경인 아라뱃길에 둘러싸인 면적은 약 313.4km2이다. 통진 지역 서북부를 제외한 지역이 평야를 이룬다. 옛 통진군 지역만을 반도로 간주하여 통진반도로 구별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김포군 (검단 포함)과 통진군으로 되어 있었다. 김포시내와 검단을 합쳐 '검포'라고 불린 적도 있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김포반도의 전역과 양천군(오늘날의 양천구와 강서구)가 김포군으로 통합되었다. 1963년에 양천군 지역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계양면도 김포군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89년 1월 1일 계양면이, 1995년 1월 1일 검단면이 인천에 편입되었다. 이명박 정부시기 경인 아라뱃길을 건설하면서 김포시와 아라뱃길 이북의 계양구, 검단의 아라뱃길 이북 지역은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지역이 되었고, 그래서 '김포섬'이라는 섬으로 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반도다. 결정적으로 섬의 정의에도 어긋난다.[1]

반도의 기준[편집]

  • 반도(半島, peninsula)는 육지 또는 대륙으로부터 돌출하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을 말한다.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는 반도는 성인(成因)에 따라 대규모의 지반운동 즉, 단층(斷層)이나 습곡운동(褶曲運動)에 의하여 형성된 것과 산지의 말단부가 침수되면서 익곡(溺谷)과 익곡 사이의 돌출부가 남은 것, 그리고 연안의 모래톱이 성장하면서 형성된 것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는 서남아시아에 있는 아라비아반도다. 면적은 약 320만㎢로, 한반도의 14.5배다. 1만 년 전에는 푸른 땅이었다고 하나 지금의 아라비아반도는 대부분이 사막기후대로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사람이 살기에는 척박하지만, 이슬람의 발상지로 이슬람문화가 발달했다. 석유가 발견되면서 부유해진 국가들도 많다. 아라비아반도의 80%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다.
  • 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주는 육교의 역할을 하며, 대륙과 해양으로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 반도 국가인 한국은 일찍이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에 전파시켰고, 때로는 대륙과 해양 양쪽에서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한국이 임해공업과 원양어업을 진흥시키고, 해외무역에 주력할 수 있게 된 것도 반도적 위치가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반도로 옹진반도·태안반도·변산반도·해제반도·화원반도·해남반도·장흥반도·고흥반도·여수반도·고성반도 등을 들 수 있다. 동해안에는 지반의 융기에 의하여 형성된 장기반도와 모래톱이 성장하면서 형성된 호도반도·갈마반도 등이 있다.

섬의 기준[편집]

  • 섬은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인 땅이다. 섬은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는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적당히 큰 섬은 도(島, island)라 하고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하여 이 둘을 통칭 도서(島嶼)라 한다.
  • 섬은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나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와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섬도 있다.
  •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김포반도의 지형조건[편집]

  • 김포반도는 오랜 침식작용으로 낮아진 준평원과 한강 중·상류 및 지류에서 운반된 토사의 퇴적작용으로 발달한 충적지로 이루어졌다. 1995년 검단면이 인천광역시 서구에 편입되면서 김포시의 지형이 대체로 열쇠 모양을 이루게 되었다. 원래 김포·검단 지역에는 수십 개의 섬과 암초들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고, 유도(留島)·부래도(浮來島) 등 4개의 무인도가 남아 있다.
  • 이 지역의 산들은 광주산맥의 말단인 인천 계양산에서 북으로 뻗은 줄기가 사우동의 장릉산(150m)으로 이어지고, 북서쪽으로 뻗은 줄기는 양천읍과 인천 서구의 경계를 이루는 가현산(215m), 대곶면의 수안산(147m), 월곶면의 문수산(376m) 등으로 이어진다. 산지는 최고봉인 문수산을 비롯하여 해발 100~300m 안팎의 완만한 경사를 나타내는 구릉성 산지가 대부분이며, 전체 면적의 90% 이상이 표고 50m 이하의 평탄지를 형성한다.
  • 구릉성 산지는 주로 김포반도의 서부에 산재하고 동부의 한강 연안에는 충적지가 넓게 발달하여 대체로 서쪽이 높고 동쪽은 낮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의 지세를 이룬다. 한강과 그 지류가 형성한 범람원으로 이루어진 하성충적평야(河成沖積平野)인 김포평야가 김포시에서 고양시·파주시까지 전개되어 예로부터 경기도의 주요 곡창지대를 이룬다.

김포반도의 생태환경[편집]

  • 겨울에는 시베리아기단의 북서계절풍, 여름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의 남동계절풍 영향으로 한서(寒暑)의 차이가 심한 편이다. 서해에 접하여 내륙에 비하면 기온이 온화한 편이지만, 겨울에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고 북상하는 난류의 영향은 별로 받지 못하여 같은 위도상의 동해안 강릉에 비하면 기온이 낮다.
  • 하천은 한강이 김포반도와 고양시·파주시 및 북한과 경계를 이루며 흘러 서해로 유입되는데, 옛 통진에 해당하는 김포 북부에 흐르는 한강을 조강(祖江)이라고도 한다. 양천읍 구래리에서 발원하는 봉성포천은 거물대천·가마지천·서암천·수참천·석모천 등의 지류와 합쳐져 한강으로 합류하고, 하성면 양택리에서 발원하는 양택천은 양택저수지를 이루고 남동쪽으로 흘러 한강에 유입된다. 이밖에 인접한 인천 지역에서 발원하는 계양천·굴포천 등이 김포로 흘러들어 한강으로 합류한다. 한편, 인천 서구 오류동에서 발원한 검단천은 오류동과 김포 양천읍의 경계를 이루며 남서쪽으로 흘러 염하로 유입되고, 이밖에 통진읍 옹정리에서 발원하는 포내천, 대곶면에서 발원하는 석정천 등이 염하로 흘러든다.

김포반도전투[편집]

  •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경기도 김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 하류인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김포지구 전투'라고도 한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활약으로 개성을 점령하고 남하한 북한군 제6사단의 진격을 지연시켜 국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임진강한강이 합류해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김포반도 북단 지역은 유속이 빠르고 강폭도 비교적 넓은 편이다. 북한군은 김포반도 북단의 월곶면과 하성면 지역으로 강을 건너 진출하려고 시도했으며, 국군은 문수산 등의 하안 고지에 참호를 파고 진지를 쌓아 북한군의 진출을 막으려 했다. 북한군의 일부 부대가 강을 건너 김포반도에 상륙했으며, 강녕포(康寧浦)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하를 시도했다. 국군은 포격 등으로 북한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 때문에 1950년 6월 27일 오전까지 북한군 제6사단의 병력 대부분이 강을 건너왔고, 국군은 통진으로 물러났다. 국군은 운유산과 천마산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김포읍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차단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김포읍과 양곡 방면으로 퇴각해야 했다.
  • 김포지구전투사령부는 병력과 장비가 모두 열악한 상황에서도 김포반도 전투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진격을 상당 기간 지연시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신속히 인천·수원 방면으로 진출해서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겠다는 북한군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다. 또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활약으로 서부전선을 지키던 국군은 안전하게 한강을 건너 철수해 한강 방어전을 벌일 수 있었다.

경기만[편집]

  • 경기도 시흥시의 해안이 마주하는 서해의 만이다. 경기만은 한반도의 서해안에서 충청남도 태안반도와 황해남도 옹진반도 사이에 있는 거대한 만(灣)이다. 경기만에는 남양만·아산만·해주만 등 경기만의 2차적인 여러 만입부(灣入部)가 발달해 있어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하다. 경기만에는 영종도, 강화도, 대부도, 제부도, 덕적도 등 크고 작은 130여 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어 일명 경기 다도해를 이룬다. 해안선의 길이는 528㎞에 달하고 만의 입구는 서쪽으로 열려 있다. 폭은 약 100㎞, 만입은 약 60㎞이다. 시흥시는 경기만의 동쪽 끝부분에 자리하며 시화방조제와 오이도해양단지, 배곧 신도시, 월곶 신도시 등이 경기만에 접해 있다. 경기만에 접한 시흥시의 해안선 길이는 약 15.6㎞이다.
  • 경기만은 복잡한 해안선으로 이루어지며 그 사이에 여러 곳의 만, 반도, 섬이 있다. 주요 만입부에는 강화만·인천만·남양만 등이 있고, 반도부에는 김포반도·인천반도·화성반도 등이 있다. 시흥시는 화성반도와 인천반도의 사이에서 경기만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시흥시의 오이도와 옥구도 등은 과거 경기만에 자리한 섬이었지만, 지금은 육지로 연결되었다. 경기만은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크다. 시흥에서 가까운 인천 앞바다의 대조차(大潮差)는 8.1m에 달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해서 경기만에는 갯벌이 넓게 발달해 있다. 시흥시에도 과거 갯벌이 널리 분포했지만, 지금은 해안 매립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신천과 장현천이 경기만으로 흘러가는 유로에는 시흥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수심은 40m 내외로 깊지 않아서 썰물 때는 개펄[간석지]이 넓게 펼쳐진다. 경기만에는 갯벌이나 조류의 흐름에 따라 미세한 퇴적물이 쌓여 있어 자연 생태계의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김포시[편집]

  • 경기도의 북서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6˚ 36´~126˚ 48´,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34´~37˚ 46´에 위치하며, 삼면이 한강 하구부와 염하(鹽河) 및 강화만에 둘러싸인 김포반도에 속한다. 동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파주시·고양시와, 서쪽으로는 염하를 사이에 두고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인천광역시 서구 및 계양구와, 동남쪽으로는 서울특별시 강서구와 접하며, 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다. 시의 동쪽 끝은 고촌읍 전호리, 서쪽 끝은 월곶면 보구곶리, 남쪽 끝은 고촌읍 태리, 북쪽 끝은 하성면 시암리이다. 동서 길이는 23.61㎞, 남북 길이는 17.71㎞이며, 해안선 길이는 총 31.88㎞이다. 면적은 276.61㎢로 경기도 전체 면적의 2.7%를 차지하여 도내 31개 시·군 가운데 15번째로 넓다. 행정구역은 3읍 3면 8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성면이 전체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여 가장 넓다.
  • 시를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까치이다. 시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물과 운하의 도시, 지역 특산물인 금쌀을 모티브로 하여 각각 물방울과 쌀 모양의 남녀 어린이로 친근하게 형상화한 '포수(浦水)'와 '포미(浦米)', 그리고 시조(市鳥)인 까치를 모티브로 김포와 까치를 합성하여 명명한 '포치'이다. 시청 소재지는 사우동이다.

김포평야[편집]

  • 김포평야한강 하류의 서안에 펼쳐진 평야이며 해발고도 300m이다. 김포평야는 경기도 파주시, 고양시, 김포시에 걸친 평야이다. 김포시 일대 평야의 기반암은 호상편마암으로 이루어지고, 남부 일대만 엷은 퇴적층으로 덮여 있다. 김포시 북서부의 문수산(文殊山:376m) 일대의 구릉은 김포평야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구릉지를 이룬다. 경기도 고양시한강변은 대부분 충적층으로 덮여 있으며, 해발고도가 극히 낮기 때문에 항상 침수의 위험을 안고 있다. 토양은 비옥하여 주요 경작지대를 이루며, 김포쌀은 질이 좋아 예로부터 통진미(通津米)로 알려졌다.
  • 김포평야는 굴포천과 한강 하류 남안에 형성된 퇴적평야로, 김포시를 중심으로 인천, 부천, 서울에 걸쳐 발달해 있다. 통진평야라고도 한다. 핵심부는 하천이 범람하여 침수하는 범람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변은 기복이 작은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침수가 잦은 배후습지에는 일제강점기 초부터 인공제방이 축조되었다. 본래 밭으로 많이 이용되어 특히 통진미가 수랏상에 오르던 진상미라 하여 유명하였다. 현대에 들어 주거지가 들어서며 토지이용이 크게 변화하였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김포반도〉,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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