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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3일 (화) 11:29 기준 최신판
국사봉(國思峰)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봉천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개요[편집]
- 국사봉은 높이 179m인데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먼저 조선 시대에 양녕대군이 이 산에 올라 멀리 경복궁을 바라보며 나랏일을 걱정하였다고 하여 '국사(國思)'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또, 조선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한양을 돌아보니 이곳이 백호가 되어 한양 외곽으로 빠져가는 지세임을 알고, 이 산에 사자암(獅子菴)이라는 암자를 지어 백호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맥을 잡았기 때문에 무학대사를 국사(國師)라 여겨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국사봉은 남쪽의 관악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지맥의 봉우리이다. 국사봉 정상부를 중심으로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완만한 능선을 이루며, 정상에서 동쪽으로 약 340m 가량 떨어진 도로와 접하며 경사가 완만해지다가 동쪽으로 능선이 다시 연결되며, 이 능선을 따라가면 관악산과 이어진다. 국사봉 정상부를 중심으로 상도근린공원이 위치하며, 상도근린공원 곳곳에 체육시설 및 쉼터를 조성하여 주민들의 문화·휴식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상도근린공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따라 동작충효길의 제6코스인 동작마루길이 조성되어 지역의 역사적 사실에 주민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동작마루길은 국사봉 동쪽으로 제2코스와 제7코스로 이어지며, 서쪽으로 제4코스와 제5코스로 연결된다. 국사봉 동쪽에는 국사봉터널이 있는데, 국사봉터널의 북쪽 초입에 양녕대군 이제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이 위치한다. 북서쪽 사면에는 사자암이 있다. 국사봉 주변지역은 모두 개발되어 주택이 들어서 있다. 국사봉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여의도와 남산, 남쪽으로는 관악산을 조망할 수 있다.[1]
- 국사봉은 한자로 國師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國思峰 또는 國士峰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나라의 스승이 사는 산, 나라를 생각하는 산 등으로 해석된다. 서울의 국사봉도 산 자락에 묻혀 있는 양녕대군이 멀리 경복궁을 바라보며 동생 세종의 일을 걱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 국사봉에 무속적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당곡마을, 거북바위(龜巖)라는 지명이 무속적 흔적이다.
- 국사봉은 서울시의 동작구와 관악구 사이에 있는 산이다. 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공원으로서의 명칭은 상도근린공원이다. 원래는 삼성산(三聖山)이라 불렀고 사자봉(獅子峰)이라는 별칭이 있었다.[2] 삼성산(三聖山)은 서울시 관악구, 동작구, 금천구 그리고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이는 481m이다. 천주교 삼성산 성지가 위치한 곳으로 유명하다. 동작구와 관악구에 걸쳐 있는 국사봉은 상도동의 남쪽에 위치한다. 국사봉에는 상도근린공원을 비롯해 곳곳에 시민들의 휴식과 운동을 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동작구에서 만든 동작충효길6코스가 국사봉을 지나간다. 국사봉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관악산과 삼성산이 눈에 들어온다. 국사봉은 산 전체에 실핏줄처럼 등산로가 퍼져 있다. 산에 오르는 입구도 아주 많다. 동작구 상도동 쪽에서도 여러 곳이지만 남쪽의 관악구 보라매동, 은천동, 성현동 쪽에서도 여러 곳에서 오를 수 있다. 국사봉 서쪽 끝의 구립연꽃어린이집 옆의 입구도 그 중 하나이다. 동작충효길6코스는 지하철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에서 시작돼 이곳을 지나 국사봉을 향하고 동쪽 끝으로는 살피재까지 이어진다.
지리환경[편집]
- 국사봉 서쪽 산허리에 있는 사자암은 등산로 바로 옆에 있다. 사자암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을 도운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국사봉 북쪽 끝자락에는 양녕대군 이제 묘역이 있다. 지덕사라 한다. 양녕대군이 총명한 동생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부왕 태종의 미움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국사봉은 후대에 정조가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기 위해 국사봉을 넘다가 양녕대군과 세종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장승을 세운 곳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그 장승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승배기라는 지명이 남았다.
- 국사봉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양녕로가 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고 서쪽에서 동쪽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왕복 2차로인 양녕로를 건너야 한다. 양녕로 동쪽 기슭에 국사봉중학교가 있다. 또한 부근에 구암고등학교가 있고 학교 뒤에 정자인 구암정이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국사봉의 줄기가 길게 뻗어져 있으니 상도역까지 이어진다. 그 산줄기 동쪽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힐스테이트 상도아파트다.
- 국사봉 동쪽 지역에 성현드림숲이 있다. 예전에 무허가 건물들이 있던 곳을 깨끗이 정비하고 산뜻하게 공원화했다. 국사봉은 곳곳에 운동시설이 참 많다. 국사봉 정상 부근에 특히 많지만 그 외에도 산중 곳곳에 쉼터와 운동 시설이 있다. 국사봉에는 산새들이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어치가 유난히 많다. 어치는 고운 태깔과는 달리 우는 소리는 상당히 시끄럽다. 국사봉 서쪽 끝 사자암 뒤편 골짜기에 특히 많이 산다. 구암고등학교 부근 상도근린공원의 숲도 새들이 떼를 지어 모인다.
- 국사봉은 사방이 온통 주택 밀집 지역이다. 그런 지역에 우뚝 솟은 국사봉은 삼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숲속에 산책로가 신경망처럼 퍼져 있어 산책하기에 그저 그만이다. 국사봉 정상을 지나는 동작충효길6코스 말고도 산허리를 지나는 길도 있고 그밖에 많은 산길이 있다. 지하철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장승배기역, 상도역, 숭실대입구역, 2호선 봉천역, 신림역, 서울대입구역 등이 국사봉 부근에 있다.
명칭 유래[편집]
-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와 관악구의 경계상에 있는 산으로, '국사봉'(國思峰) 혹은 '국사봉(國師峰)'으로 혼용되어 불리고 있다. '국사봉 지명 유래'는 1994년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발행한 『동작구지』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2018년 발행된 『동작뉴스』 기사 등에 '국사봉(國思峰)' 혹은 '국사봉(國師峰)'으로 불리는 자료 등이 남아 있다. 국사봉(國思峰)으로 불리는 이유는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이 산의 봉우리에 올라 동생인 세종(世宗 1397~1450)과 나라를 걱정했다 해서 '생각 사(思)'를 붙여 '국사봉(國思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비록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준 뒤 대궐에서 쫓겨났지만 세종이 형인 양녕대군을 위하는 마음과 양녕대군이 세종을 위하는 마음 등 우애 깊은 형제의 얘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오는 것도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국사봉 아래 사자암을 지었기 때문에 무학대사를 국사로 보고 '국사봉(國師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일대에 남아 있는 무속신앙 등을 살펴볼 때 마을을 수호하는 신을 모시는 국사당(國師堂) 혹은 성황당(城隍堂)이 있는 봉우리라는 뜻의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렸을 개연성도 있다. 국사봉 일대는 신점, 신굿 등 오랫동안 무속신앙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1872년 편찬된 시흥현지에는 사자봉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봉우리에 사자암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3]
국사봉 역사[편집]
- 동작구와 관악구를 가르는 국사당에는 민중의 애환이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한강 북쪽 한양도성 안에는 권세 높은 양반네들이 살았고, 가난한 백성들은 한강 남쪽 노량진에 살았다. 그나마 일거리와 먹을거리라도 있으면 다행,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도적질을 할 수밖에 없다. 국사봉 근처에 살피재라는 지명이 그런 곳이다. 숭실대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높고 험한 데다 숲이 울창해 도둑들이 나타나 길손을 괴롭혔다. 고개를 넘는 길손들에게 살펴서 가라고 당부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 또 다른 어원으로는 고개가 높고 험하고, 백성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어려움이 많아 슬프다는 뜻으로 슬피재라 하다가 음이 변해 살피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도동 지덕사에서 봉천동으로 넘어가는 능고개의 전설에도 민중의 애환이 묻어난다. 능고개는 세종대왕의 형인 양영대군의 능묘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국사봉 밑 상도동 쪽에 사자암이란 전통사찰이 있다. 조계종 소속으로, 조선 태조 5년(1396) 무학대사가 한양청도 과정에서 창건했다고 한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명으로 한양의 풍수를 살펴보던 중에 만리현(만리동)이 달아나려는 백호의 형상이었다. 이에 무학대사는 백호를 제압하기 위해 한강 건너 관악산에 호압사를 짓고, 사자 형상인 국사봉에 사자암을 조성했다. 국사봉을 사자봉이라고도 한다. 이 절에는 많은 고승들이 머물러 수도했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호국도량으로 유명하다.
사자암[편집]
- 사자암(獅子菴)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삼성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이다.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396년(태조 5) 무학대사 자초(自超)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자암이 있는 삼성산과 인근의 호암산은 산의 형세가 북으로 내달리는 호랑이 형국이라 풍수상 조선의 수도 한성에 좋지 않았다. 무학대사는 그 기세를 막기 위해 사자 형상을 띤 국사봉 아래에 사자암(獅子菴)을 세웠고, 호암산에는 호랑이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지닌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 한다.
- 사자암은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피폐해졌으나 1726년(영조 2) 숙종의 여섯째 아들 연령군의 부인 서씨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극락보전의 아미타불상에 개금불사를 하면서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그 후 1846년 지장시왕도(지장탱화)와 신중도(신장탱화), 1880년 현왕도(현왕탱화)를 봉안하였는데 지장시왕도·신중도·현왕도·영산회괘불 등 사자암소장불화 4폭은 19세기 후반 서울·경기 지역에 유행하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2005년 7월 6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1936년 극락보전을 보수하고, 1985년 극락보전과 단하각(산신각), 수세전(칠성각), 요사채를 중건하였으며 범종각을 신축하였다. 사찰의 건물들은 주전각인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극락보전은 겹처마 맞배지붕 다포집으로 내부 천정은 연등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주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외벽에는 심우도(尋牛圖)와 고승과 선사들의 불도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극락보전 맞은편에는 정면 7칸·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인 강당(대방)이 있는데 이곳은 설법전으로 사용된다.
약수암[편집]
- 약수암(藥水庵)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국사봉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정식 명칭은 약수선원(藥水禪院)으로,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에 소속되어 있으며 1970년대에 건립되었다. 선학원은 한국불교의 전통 선풍(禪風)을 수호하고, 불조의 정맥을 굳게 계승함으로써 일제의 사찰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1921년 11월 30일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수암은 관악산 줄기인 국사봉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부근에 조선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1462)의 묘와 사당인 지덕사부묘소(至德祠附墓所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1호)가 있다. 옛날에는 강정공(剛靖公)이라는 양녕대군의 시호를 따서 이 일대를 강정골로 부르다가 강적골(剛靖谷)으로 바꿔 불렀다 한다. 약수암 근처에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암(藥水庵)이라는 이름은 이 약수터에서 비롯된 것이다.
- 약수암은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 범종각으로 이루어진 단출한 규모이다. 2층 누각에 있는 범종각은 특이하게도 아래층은 사찰의 출입문으로, 윗층은 종루로 사용된다. 범종각 아래의 출입문을 통과하여 잔디와 수목으로 깔끔하게 조경된 뜰을 지나면 대웅전이 나온다.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목조기와집인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하여 좌우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요사 등으로 쓰는 3층 규모의 양옥이 있고, 대웅전 뒤쪽 높은 지대에 삼성각이 있다. 사찰 바로 앞으로 아파트가 들어서서 예전의 고즈넉한 멋이 많이 퇴색되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국사봉〉, 《위키백과》
- 〈국사봉〉, 《향토문화전자대전》
- 〈국사봉 지명 유래〉, 《향토문화전자대전》
- 소바칸, 〈서울 동작구 국사봉 동작충효길 6코스 동작마루길 산책코스〉, 《네이버블로그》, 2022-01-23
- 조수연 기자, 〈가을느낌 물씬~ 걷기 좋은 서울길 '국사봉 숲길'〉, 《내 손안에 서울》, 2021-10-05
- 박차영 기자, 〈관악-동작 사이 국사봉에 스며든 민중의 애환〉, 《아틀라스뉴스》, 2021-10-01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