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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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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평도

대연평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145㎞ 떨어진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 면적 7.01㎢이며 소연평도와 함께 연평도를 이루고 있다.

개요[편집]

  • 대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延坪面)에 있는 섬이다. 대연평도의 대표적 문화유적지는 임경업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충민사이다. 병자호란 이후 임경업 장군은 의주부윤 재직 시절 명나라의 도움으로 청나라를 치려고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중국 산동으로 떠났다. 도중에 잠시 연평도에 머물게 됐고 가시나무를 연평도 앞바다에 꽂자 수많은 조기가 잡혔다고 한다. 그 뒤로 주민들은 임경업 장군 사당을 짓고 봄마다 풍어제를 지냈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속훼리로 2시간, 차도선으로는 4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대연평도는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조기 파시 때는 삼남은 물론 서울의 마포를 떠난 배들도 모여 북적거렸다. 여름철이면 기암괴석과 흰 자갈, 고운 모래와 해송이 조화를 이룬 구리동해변이 피서지로 각광받는다. 조기역사관, 빠삐용절벽, 지금은 불을 밝히지 못하는 등대가 남아 있는 등대공원 등이 연평도의 관광명소로 올라있다. [1]

소연평도[편집]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소연평리에 딸린 섬이다. 면적 0.236㎢로 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소연평도는 인근에 있는 대연평도의 부속 도서(島嶼)이며,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구성된 연평도는 북한과의 경계선에 가까운 서해5도 중 하나이자 한국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대연평도에서 남쪽으로 6.4km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 4.7km를 따라 얼굴바위 등 기암괴석과 충식석회암이 절경을 이룬다. 주변 바다에서 농어·민어·준치·우럭 등이 많이 잡히고 굴·소라 등 패류도 많아 2000년 말 현재 37세대 97여 명의 주민은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
  • 섬의 경작지에서는 감자·옥수수·고구마 등을 재배하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고구마는 맛이 좋다. 억새풀이 많이 자라 옛날에는 지붕이나 가축먹이·연료 등으로 사용했으며, 쇠의 대용으로 쓸 만큼 단단한 타이타늄이 난다. 타이타늄광이 있는 오석해안에는 마모된 타이타늄 자갈밭이 있어 찜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굴바위[편집]

  • 대연평도 남방 6.4km 거리의 소연평도의 동남 쪽에 위치한 바위로,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겼다 하여 "얼굴바위"라 부르며, 대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대연평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명소다.

연평도[편집]

  •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연평도는 면적 7.01㎢이고 소연평도는 면적 0.24㎢이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 북한 해안포 진지와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지명은 평평하게 뻗친 섬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황해도 벽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으나 현재는 꽃게잡이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었으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한편, 소연평도에서는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 자철광상이 발견되었다.

대연평도 까치산패총[편집]

  • 대연평도 까치산패총(大延坪島까치산貝塚)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주거지 관련 조개더미이다. 신석기시대 전·중기(서기전 4,000~3,000년) 중서부 도서지역의 전형적인 조개더미이며, 2003년도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하였다. 유적의 입지 환경과 출토유물의 특징으로 보아 어패류 획득과 수렵을 통한 생계활동을 위한 임시 생활공간으로 추정된다. 조개더미는 10개 층으로 구성되며, 퇴적층에서는 야외노지 5기, 수혈주거지 1기가 검출되었다. 조개더미는 층위양상과 출토유물의 특징에 따라 2개 문화층으로 구분되며, 여기서 다양한 문양이 시문된 각종 즐문토기, 어망추, 석부, 긁개, 골각기를 비롯하여 동물유존체가 출토되었다. 조개더미에서는 다양한 문양을 시문한 즐문토기와 석기, 골각기을 비롯하여 동물유체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225점이 출토된 즐문토기 편이다. 즐문토기 기형은 심발형과 발형으로 구분되나 대부분 심발형토기이다. 문양은 형식적 특징에 따라 구분계와 동일계로 구분된다. 구분문계토기에는 점열문·종주어골문·횡주어골문이, 동일계토기에는 타래문·점열문·능문(菱文)·중호문(重弧文)·조문(爪文)·죽관문(竹管文)·거치문(鋸齒文) 등이 시문된다.
  • 2003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서해 5도 지역에 대한 선사시대 패총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발굴 조사하였다. 대연평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145㎞ 떨어진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황해도 부포리와 불과 10㎞ 거리에 있다. 유적은 연평 중·고등학교 동쪽에 위치한 해발 58m 산의 능선상에 입지하며 해안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까치산패총은 패각의 양이 많고 출토 유물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어로활동이나 패류 채취 등 해양자원의 획득과 수렵을 통한 생계 활동을 위해 반복적으로 점유한 임시 근거지 유적으로 추정된다. 대연평도 까치산패총은 대동강유역과 한강유역의 문화가 복합되는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조개더미에서 출토되는 동물유존체는 신석기시대 서해안지역의 어로민 생계양상과 생업활동을 연구하는데 많은 학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서해5도에 위치한 연평도 지역은 지리적으로 황해도와 인접하고 있어 북한지역의 서해안 신석기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소연평도를 제외한 대연평도의 조개무지는 크게 배가 닿는 당도(堂島) 일대와 모이도(毛伊島), 연평부락 일대, 까치섬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이 섬의 동남쪽 해안가를 따라 밀집 분포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모이도 조개무지에서 채집된 유물은 빗금무늬(斜線文)와 횡주(橫走)생선뼈무늬·점무늬(點列文) 등이 시문된 토기와, 제작수법상 구석기적 전통을 보여주는 다량의 석영제 찍개(Chopping tool)·긁개(Scraper)·몸돌(Core)·격지(Flake) 등이 출토되었다. 당도조개무지에서는 띠모양과 민무늬토기편들이 출토하고 있으며, 한편 고려 ·조선 시대의 자기편(瓷器片)들이 출토되는 조개무지도 있어 이 시대에도 연평도에 주민이 살았음을 입증해 준다. 기타 지구에서도 빗살무늬·횡주생선뼈무늬·빗금무늬·파상(波狀)점선무늬·민무늬 토기 등과, 찌르개·찍개·긁개 등의 석기가 나왔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들의 무늬가 빗살무늬토기 후기의 대표적 무늬인 횡주생선뼈무늬와 병행빗금무늬가 부위(部位)에 구별없이 전면에 동일하게 시문되어 있어 연평도 조개무지의 연대는 신석기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많은 조개무지들이 한 섬에 밀집 분포하고 있는 사실은 이곳이 북서풍을 피하기 좋거나 풍부한 어로 등의 자연적 조건이 사람이 살기에 좋았음을 보여준다.

충민사[편집]

  • 대연평도에 위치한 충민사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있는 임경업 장군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1985년 12월 12일 옹진군의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명장 임경업(1594~1646) 장군이 연평도 주민에게 끼친 전설적인 시해를 숭모, 제향하는 사당으로, 인조 때 당시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안주목사로 있던 임경업장군이 두 왕자(소현세자, 봉림대군)를 구출하기 위해 청을 쳐야한다고 생각하고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산동으로 향하던 도중에 연평도에 잠시 정박하게 되어, 가시나무를 연평도 앞바다에 꽂게 하여 간조 때에 많은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이것이 조기잡이의 유래가 되어 주민들이 임경업장군의 선견지명을 숭배해 사당을 건립하고 봄마다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2]

대연평도 유역환경[편집]

  • 대한민국의 섬들은 곳곳마다 수많은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연평도 또한 그런 대표적인 섬이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아픔을 수도 없이 겪은 섬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을 타면 소연평도를 들른 다음, 2시간 20분 항해 끝에 연평도의 관문 당섬선착장에 도착한다. 대연평도는 한국에 매우 중요한 군사기지로, 손님들 중에서 백령도처럼 군인들이 가장 많다. 당섬선착장에는 연평도 관광안내도가 있다. 서북쪽에는 작은 무인도들이 있는데 파도를 막아 주는 천연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바다 건너편에 있는 모이섬과 소연평도가 눈에 들어온다. 당섬에 있는 연평바다 앞에는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연평해전 전승비가 세워져 있는 당섬공원을 지나면 당섬선착장과 마을을 이어주는 연도교가 나온다. 연도교에서 바라보면 연평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중부리 마을이 보인다. 연평도의 유일한 단일 마을이다. 본섬에 도착하면 길 이름이 연평로라고 안내해 준다.

구리동 해수욕장[편집]

  • 서해 최북단에 있는 천혜의 해수욕장으로 북한의 옹진반도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길이 약 1km, 폭 200m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기암괴석과 흰 자갈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바다와 어우러진 해송이 시원스럽다.

관광전망대(조기역사관)[편집]

  • 대연평도 역사와 함께 하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자 2001년에 건립했다.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곳이다. 1999년 6월 15일 발발한 서해교전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병풍바위(오석해안)[편집]

  •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 같다 하여 병풍바위라 불린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가에 둥근돌(오석)이 모이게 된 일명 '오석해안'이 펼쳐져 있다.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잔 자갈밭을 맨발로 걸으면 지압 효과와 찜질 효과까지 동시에 볼 수 있다.

대연평도 특산물[편집]

  • 대연평도 포도는 해풍에 노출시킨 채 자연의 일부분으로 생육시키기 때문에 뜨거운 여름에 생산하지 않고 늦은 가을철에 수확한다. 당도가 높고 향기가 있으며 아주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김은 단백질이 많고 카로틴, 비타민A의 모체와 비타민B 복합체, 비타민C와 칼슘 등 무기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물이 맑고 깨끗하여 특유의 향과 단맛이 으뜸이다. 바다의 우유라 불리는 자연산 굴은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생산되며 고단백 식품으로 환자 및 노약자의 건강과 피로회복에 그만이다. 꽃게는 씨알이 굵고 맛이 좋아 최고의 상품으로 여긴다. 그리고 바지락은 피로회복 및 숙취제거 식품으로 애용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대연평도〉, 《네이버지식백과》
  2. 연평도 충민사〉,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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