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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일 (목) 23:14 기준 최신판

호미곶

호미곶(虎尾串)은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반도 끝,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한 이다. 장기곶이라고도 부른다.

개요[편집]

  • 호미곶은 동외곶(冬外串)·장기곶(長鬐串)이라고도 한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8년 이후에는 장기갑(長鬐岬)으로 불리다가 1995년 장기곶(長鬐串)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 2001년 12월 '호랑이 꼬리'라는 뜻의 호미곶(虎尾串)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꾸었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였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내륙 쪽은 해발고도 200m의 산지지만, 대보리(大甫里)·구만리(九萬里) 사이에 어촌이 발달해 있고 약간의 농경지도 펼쳐진다. 해안에서 2km까지는 수심 약 40m 정도이며 대보리에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1]
  • 호미곶은 동외곶(冬外串) 또는 장기곶(長鬐串)이라고도 하며 포항시의 동쪽, 장기반도의 북쪽 끝에 있는 이다.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장기곶으로 불렸는데, 1918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표현인 갑(岬)으로 고쳐 장기갑으로 불리다가 1995년에 장기곶으로 변경하였다. 2001년 12월부터 일본식 표현을 뺀 호미곶으로 변경하였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소재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지명 변경됨에 따라 지정문화재인 "장기곶등대"를 지도표기와 동일한 명칭인 "호미곶등대"로 변경한다. 해돋이 명소로 유명하다. 호미곶 해안단구는 경북동해안 국가지질공원의 지질유산으로 약 9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 원래 파식대였던 해안단구는 지면이 점차 융기하여 현재 농경지로 이용된다. 호미곶 일대 해안에는 바위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고제3기의 강사리 각력암에 해당한다. 이 각력암은 내부에 다른 암석의 조각들을 포함하고 있다.[2]
  •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장기반도 끝, 영일만을 이루면서 돌출한 곶이다. 예전 이름은 조선 시대 호미곶을 관할한 장기군에서 유래하는 장기곶(長鬐串, 또는 동을배곶(冬乙背串)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이름은 장기갑(長鬐岬)이었다. 2001년 12월 지금의 이름인 호미곶으로 변경하였다. 대보리의 이름을 따서 대보곶(大甫串)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동해산수비록(東海山水秘錄)》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묘사하고 명당으로 꼽았다.[3]
  •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의 영일만 장기반도의 끝에 있는 곶이다.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동해면, 호미곶면에 속하며 서쪽은 영일만, 동쪽은 동해에 접한다. 공개산(孔開山, 214.6m)이 주봉을 이루는 산계(山系)가 동북 방향으로 이어져 북동부의 호미곶에 이른다. 해안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며, 이곳에서 구룡포에 이르는 해안에는 대단히 모식적인 해안단구가 발달되어 주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이며, 호미곶 등대로도 유명하다.[4]

호미곶 한민족해맞이 축전[편집]

  •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虎尾串韓民族─祝典)는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면 호미곶에서 해마다 12월 31일~1월 1일에 열리는 해돋이 관광축제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영일만 호미곶의 해돋이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 10경 중의 하나로 꼽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일출의 명소 호미곶에서 열리는 한민족해맞이축전은 9,172평의 해맞이 광장과 해맞이 타워, 전시관, 수족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펼치는 본격적인 해돋이 관광축제이다. 행사에 연오랑·세오녀선발대회, 월월이청청, 모포줄다리기, 서예대전, 해병대장비전시, 경북궁도대회, 전국사진작품 공모전, 수석전시회, 국악경연대회, 백일장, 미술실기대회, 연극공연, 무용공연, 군악연주회, 전국시조경창대회, 클래식기타와 실내악 연주회, 지게상여, 동해별신굿, 윷놀이, 그네뛰기, 거리축제, 일월신제, 햇빛채화식, 국악공연, 가장행렬, 영일만풍어제 및 어선퍼레이드, 불꽃놀이, 시민노래자랑 등이 있다. 연오랑·세오녀선발대회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연오랑세오녀설화를 바탕으로 연오랑과 세오녀를 뽑고 유명 국악인 초청 공연을 가진다. 월월이 청청에서는 옛부터 포항 지역의 젊은 부녀자들이 즐겼던 민속문화행사를 선보인다. 모포줄다리기는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7호로 남·북구로 편을 갈라 3판 양승제로 치른다. 햇빛채화식은 한해의 모든 국가적인 행사에서 원불로 사용할 불을 얻기 위해 과학기술부 기술지원팀의 도움으로 햇빛을 채화한다.

명칭 유래[편집]

  •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하였고,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였다. 일명 장기곶(長鬐串), 동외곶(冬外串)이라고도 한다.
  • 한반도를 호랑이로 보았을 때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본토의 최동단에 위치한다. 한반도 지도서 동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오게 그리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현대에는 주소에도 호미곶이 들어가지만 과거 이곳은 인근 구룡포읍의 일부로 대보출장소였다가 1986년 대보면으로 독립했고, 2010년 호미곶면으로 개칭되었다. 남한 본토 최동단에 위치하여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해군 부대, 공군 방공부대가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호미곶 곳곳에서 지뢰제거 작전이 진행 중이거나 진행되었더라도 위험성이 남아있어 경고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이다. 2020년 전후로 해서 포항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호미반도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호미곶의 지리환경[편집]

  • 호미곶 일대는 공개산과 동북쪽의 우물재산(180.1m)을 비롯한 180∼200m의 산지가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연이어 분포하고 있고, 하천은 이들 능선에서 발원하여 영일만과 동해로 유입한다. 호미곶에서 구룡포에 이르는 지역에는 평균 길이 12㎞, 평균 폭이 0.8㎞에 달하는 해안단구가 발달되어 있으며, 해발고도 20∼40m와 5∼20m에 이르는 2개의 단구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안단구는 융기해안의 보편적인 지형으로 한국의 동해안에 여러 단씩 발달되어 있다. 장기곶 해안의 헤드랜드 전면에는 현 해수면 하에서 형성된 파식대와 시스택(sea stack)이 발달되어 있고, 하구의 만입지에는 모래해안이 형성되어 있다.
  • 호미곶 일대의 지질은 주로 제3기의 양북군층과 영일군층, 제4기의 현무암류(basalt flow)와 단구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다. 장기곶의 남서부 지역의 대부분과 북동부의 일부 지역에는 반암이 분포하고, 남서부에 백악기 화강암이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호미곶 주변에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호미곶 등대를 비롯하여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해맞이공원 등이 있다. 대보리의 등대는 동해안 및 포항제철소에 출입하는 수송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미곶이 위치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은 1986년 4월 1일에 동해면 대동배 1.2리를 편입해 대보면으로 승격되어 오다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및 의회의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2010년 1월 1일부터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는 지난 10년간 호미곶 일대의 관광자원 개발에 따라 호미곶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함에 따라 명칭변경을 통해 관광도시로의 이미지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호미곶 등대[편집]

  • 호미곶 등대(虎尾串 燈臺)는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면에 있는 한말(韓末)에 제작된 등대이다.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국 최대 규모로 일명 대보등대(大甫燈臺)라고 한다. 팔각형의 근대식 건축양식으로 높이 26.4m, 둘레는 밑부분 24m, 윗부분 17m, 광력 1,000촉, 광불 거리는 16마일이다. 1901년(광무 5) 일본수산실업전문대학교 실습선이 대보 앞바다를 항해하다가 암초에 부딪쳐 몰살하였는데 일본은 이 사건이 한국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하였으며, 해난사고 발생책임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하여 손해배상을 요구하므로 하는 수 없이 한국 예산으로 일본에 등대시설을 공사하게 하여 제작한 것이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지은 건물로 건축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등탑(燈塔) 내부는 6층으로 각층 천장에는 조선 왕실의 상징인 오얏꽃 모양의 문장이 조각되어 있는 등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등대 옆에 해양수산부에서 관리하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국립등대박물관[편집]

  • 국립등대박물관(國立燈臺博物館)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南區) 호미곶면에 있는 한국 최초의 등대 박물관이다. 1985년 2월 7일에 처음 문을 열었다. 1982년 8월 4일 한국 최대의 유인등대인 호미곶등대(높이 26.4m)가 지방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자, 당시 영일군에서 건물을 짓고 포항지방해운항만청에서 자료수집을 하여 호미곶등대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1995년 운영권이 영일군에서 포항지방해운항만청으로 넘어가면서 이듬해 이름이 장기곶등대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2000년 확장사업을 마무리하여 등대원 생활관, 운항 체험실, 등대 유물관, 등대 과학관, 해양수산관, 수상전시관, 야외전시관, 테마 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2002년에는 이름을 국립등대박물관으로 바꾸었다. 한국 등대의 발달사와 각종 해양 수산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이곳에는 등대 관련 자료 및 소장품 3천여 점이 전시되어 있어서 호미곶을 찾는 이들은 다양한 체험학습이 가능하다. 인근에 호미곶해맞이광장, 구룡포해수욕장 등이 있어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호미곶면[편집]

  • 호미곶면(虎尾串面)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에 있는 면이다. 영일만(迎日灣) 끝부분에 위치하여 동·서·북쪽의 3면이 동해에 면하고, 남쪽과 남서쪽은 구룡포읍과 동해면(東海面)에 접한다. 1942년 창주면(滄州面)이 구룡포읍으로 승격하였고, 1945년 구룡포읍 대보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6년 면으로 승격하였다. 2010년 대보면에서 호미곶면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주산업은 농업과 어업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난류 교차해역으로 동식물이 풍부하고, 정치망 어업이 활발하다. 주요 어종은 꽁치·오징어·대구·방어 등이고, 미역·우뭇가사리·전복 등의 양식업과 통조림·냉동 등 수산가공업이 성하다. 포항으로 연결되는 영일만 순환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교통은 비교적 편리하다. 관광지로 국립등대박물관과 함께 문화재로 호미곶등대(경북기념물 39)가 있다.

호미곶해맞이광장[편집]

  • 호미곶해맞이광장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에 있는 해안 광장이다. 200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매년 열리는 장소이다. 포항시에서 새천년의 출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성, 새천년의 미래지향과 상징성을 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4억 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2000년 새천년 한민족해맞이 축전, 2002년 전국 최대 규모의 축구공 제작, 2004년 1만 명 떡국 만들기 체험행사, 2006년 독일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초대형 태극기 제작 등 다양한 해맞이 이벤트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13,920평의 부지에 상생(相生)의 손,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 세오녀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연오랑 세오녀상은 이야기의 배경인 영일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연오랑이 타고 간 바위가 이곳에서 솟아올랐다고 전해진다. 광장 진입로에는 유채꽃 단지가 있고 매년 4~5월경에 유채꽃이 활짝 핀다. 이밖에도 광장 주변에 한국 최초의 국립등대박물관, 호미곶의 세찬 해풍을 이용하는 풍력발전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상생의 손[편집]

  •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19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인 그해 12월에 완공됐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한다.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이며,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상생의 두손은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을 담고 있다.
  • 상생의 손의 육지에 있는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천년의 눈동자는 햇빛채화기로 햇빛의 적외선을 열로 변환시킨다. 천년의 눈동자 안의 불씨함에는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의 마지막 불씨", 남태평양 피지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 독도에서 채화한 "즈믄해의 불씨",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를 합한 "영원의 불씨"가 보관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호미곶(虎尾串)〉, 《두산백과》
  2. 호미곶〉, 《위키백과》
  3. 호미곶〉, 《나무위키》
  4. 호미곶(虎尾串)〉,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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