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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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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평도

소연평도(小延坪島)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소연평리에 딸린 이다.

개요[편집]

  • 소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위치한 섬이다. 면적 0.236㎢로 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에서 남쪽으로 6.4km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 4.7km를 따라 얼굴바위 등 기암괴석과 충식석회암이 절경을 이룬다. 주변 바다에서 농어·민어·준치·우럭 등이 많이 잡히고 굴·소라 등 패류도 많아 2000년 말 현재 37세대 97여 명의 주민은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 섬의 경작지에서는 감자·옥수수·고구마 등을 재배하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고구마는 맛이 좋다. 억새풀이 많이 자라 옛날에는 지붕이나 가축먹이·연료 등으로 사용했으며, 쇠의 대용으로 쓸 만큼 단단한 타이타늄이 난다. 타이타늄광이 있는 오석해안에는 마모된 타이타늄 자갈밭이 있어 찜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톱섬과 끼미해수욕장·얼굴바위·홍보부리 등의 관광지가 있다.[1]
  • 소연평도는 4개의 무인도와 함께 대연평도의 주변에 어우러져 있고, 풍어제와 같은 민속놀이들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연평도는 섬 전역이 농어와 우럭, 광어, 숭어 낚시터로 유명하고 소연평 전체가 거대한 티타늄 광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연평도 남방 6.4km 거리의 소연평도의 동남 쪽에 위치한 바위는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겼다 하여 "얼굴바위"라 부르며, 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소연평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명소다.
  • 소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있는 섬이다. 어미섬 대연평도 옆에 있기에 자기의 고유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소(小) 자를 붙인 것이다. 대연평도의 크기와 명성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섬, 인천에서 오가는 손님들은 대부분 대연평도로 향한다. 소연평도에 접근하면 맨 먼저 우측에 보이는 것이 얼굴바위이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절벽에서 툭 튀어나와 있기에 정작 섬에서는 잘 볼 수 없다. 배에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신비다. 얼굴바위 바로 위에 무인 등대가 있다. 여기서 등대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하얀 등대까지 한데 어우러져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소연평도의 앞 부채산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빼어난 골짜기가 있다.

서해5도[편집]

  • 서해5도(西海五島)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하는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를 말한다. 옹진반도 주변에 위치한 다섯 개의 섬으로,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있다. '서해 5도 지원 특별법' 등 법령에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소연평도를 서해5도로 칭한다. 한편 연평도에 소연평도가 포함된 것으로 보고 강화군에 속한 무인도인 우도를 더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서해5도로 칭하기도 한다. 1896년(고종 33) 이후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던 백령도·대청도·소청도와 1896년 이후 황해도 해주군에 속했다가 1938년 황해도 벽성군으로 이관되었던 연평도·소연평도는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는 1945년 광복 후 38선을 경계로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면서 38선 남쪽에 있던 서해5도가 남한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5년 행정구역이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이관되어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백령도)과 대청면(대청도·소청도), 연평면(연평도·소연평도)에 편재되었다.
  • 서해5도는 수산자원이 풍부한 수산업의 전진기지이자 농업 활동도 활발한 섬이다. 주요 수산물은 꽃게·까나리·새우·바지락·굴·낙지·김·다시마 등이고, 주요 농산물은 쌀·포도·고추·고구마·딸기 등이다. 청정해역을 비롯한 천혜의 자연을 갖추고 있는 등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남북 분단 현실과 북한과의 접경 해역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여건상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이다. 이에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와 생활안정, 복지향상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서해 5도 지원 특별법(약칭: 서해5도법)'이 지정되어 있다. 또, 남북간 특수 상황을 이용하여 성행하는 외국어선 불법조업을 막고 어민들의 조업활동과 수산자원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해양경찰 조직인 서해5도 특별경비단이 운영되고 있다.

연평도[편집]

  •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연평도는 면적 7.01㎢이고 소연평도는 면적 0.24㎢이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 북한 해안포 진지와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지명은 평평하게 뻗친 섬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황해도 벽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으나 현재는 꽃게잡이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었으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한편, 소연평도에서는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 자철광상이 발견되었다. 1999년 6월 북한 어선이 계속 이곳 앞바다를 침범함으로써 6·25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해군 함정이 최초의 교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연평도는 한동안 뉴스의 초점이 되었고 꽃게잡이가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다. 이후 2002년 6월과 2010년 11월에도 북한의 도발이 발생했다.[2]

연평도의 역사[편집]

  • 곳곳에서 패총과 무문토기·빗살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여겨진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해주군(벽성군) 송림면(松林面)에 속했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어,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임경업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忠愍祠)가 존재해 있다. 연평도는 조기잡이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외래문화의 도입은 1910년대에 천주교인 전응택(佺應澤,바오로)일가가 입도하여 교회(공소)를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연평도는 본래 해주군에 속했다가 1938년 해주읍이 시(당시는 府)로 승격되면서 해주시 주위의 종전의 해주군 지역을 벽성군(僻城郡)으로 개편할 때 벽성군에 편입되었으며, 8.15해방 후에는 38선 이남 지역이므로 경기도 옹진군(擁津郡)에 편입되었다.
  • 1945년 9월 2일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38선 남쪽인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수만 명의 피난민이 이 섬을 거쳐 남하하였다. 1995년 3월 1일 옹진군이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고, 1999년 7월 20일에 행정구역명이 송림면에서 연평면으로 개칭되었다. 인천광역시 인천항으로부터 뱃길로 120km 떨어져 있는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령반도와는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번째에 있는 이 섬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곳으로서,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라 한다. 또한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연평도는 섬 전체가 안보체험장으로 연평포격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분단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연평도 평화기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와 같은 안보관광지를 걸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북쪽 둘레길 구간에서는 북녘 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연평도 광산[편집]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소연평도(小延坪島)에 있는 티타늄·자철 광산. 소연평도 광산이라고도 한다. 인천광역시 서해안에 위치한 소연평도에 있는 광산으로, 주로 티타늄과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 소연평도는 인근에 있는 대연평도의 부속 도서(島嶼)이며,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구성된 연평도는 북한과의 경계선에 가까운 서해5도 중 하나이자 한국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소연평도는 면적 0.24㎢의 작은 섬으로 대연평도와는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중앙에 섬 최고봉인 봉화산(해발 214m)이 위치하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소연평도 전체가 노천 광산(露天鑛山)의 형태로 티타늄 및 철광석으로 산을 이루고 있다.
  • 소연평도의 광산은 선캄브리아대 퇴적암이 오랜 기간 변성작용을 거쳐 관입한 접촉광상(接觸鑛床)으로, 철광상의 아래에는 석회암이 위치하고 그 아래에는 결정편암인 석류석이 존재한다. 본래 매장량은 약 100만t가량으로, 20세기 초부터 간헐적으로 노천 채광(露天採鑛)되다가 1987년부터 대한광업진흥공사가 개발하기 시작하여 연간 15만t의 티타늄과 철을 채광하였다. 2008년 환경부에서 폐광산 주변지역 토양·수질오염실태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평도 광산은 복원이 시급한 Ⅰ등급으로 측정된 바 있다.

소연평도 유역의 관광[편집]

  • 구리동 해수욕장 : 연평 북서쪽으로 위치한 천혜의 자연 해수욕장으로 북녘해안이 보이는데 위치한 은빛백사장으로 모래사장이 1km 길이에 200m 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암괴석, 흰 자갈, 모래가 나란히 펼쳐진 곳으로,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해송이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 충민사 (향토유적 제1호) :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의 사당으로,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고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들러 식수와 부식을 구하기 위해 가시나무를 무수히 꺾어다가 지금의 당섬 남쪽 "안목"에 꽂아놓고 간조 때 이름 모를 물고기를 무수히 포획하였는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라고 하며, 해마다 봄이면 전 주민이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 병풍바위 (오석해안) -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 같아 보인다 하여 병풍바위라 불린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가에 둥근돌(오석)이 모이게 된, 일명 오석해안이 펼쳐져 있는데,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 얼굴바위 : 대연평도 남방 6.4km 거리의 소연평도의 동남 쪽에 위치한 바위로,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겼다 하여 "얼굴바위"라 부르며, 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소연평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명소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소연평도(小延坪島)〉, 《두산백과》
  2. 연평도(延坪島)〉,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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