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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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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연평도(延坪島)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延坪面)에 딸린 이다.

개요[편집]

  •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연평도는 면적 7.01㎢이고 소연평도는 면적 0.24㎢이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 북한 해안포 진지와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지명은 평평하게 뻗친 섬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출토된 토기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황해도 벽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고, 1995년 인천광역시로 통합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으나 현재는 꽃게잡이로 유명하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었으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섬에는 임경업장군각(林慶業將軍閣)이 있어 주민들이 출어에 앞서 풍어제를 지내는 관습이 있다. 대연평도의 동쪽에는 방파제(856m)가 설치된 2종항인 연평도항이 있고, 남쪽 끝에는 등대가 있다. 한편, 소연평도에서는 함철품위(含鐵品位) 50.4%인 타이타늄 자철광상이 발견되었다. 1999년 6월 북한 어선이 계속 이곳 앞바다를 침범함으로써 6·25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의 해군 함정이 최초의 교전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연평도는 한동안 뉴스의 초점이 되었고 꽃게잡이가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다. 이후 2002년 6월과 2010년 11월에도 북한의 도발이 발생했다.[1]
  • 연평도는 경기만 북서쪽에 있는 대한민국 관할의 섬 또는 제도(諸島)로, 주 섬인 대연평도(大延坪島)를 비롯하여 소연평도(小延坪島) 등 주변의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모두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한다. 2022년 12월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연평면의 총 인구는 2,138명인데, 주민 중 군인과 어민의 비중이 높아 남초 현상(성비 1.76:1, 남 1,362, 여 776)이 심하다. 서해 5도 중 하나로 군사적 요충지인 탓에 한국군 부대가 주둔 중이다. 꽃게 어장이 형성되어 있는 등 어업상으로 중요한 곳이다. 예전에는 5월 조기철에 1,500척 이상의 어선이 모여들어 파시(波市)가 섰었으나 1968년 이후에 사라졌고, 현재는 조기 대신 꽃게를 중심으로 한 어장이 형성되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 및 어업에 종사한다. 교육기관으로는 1999년에 초중등학교가 하나로 통합된 연평초·중·고등학교가 있다. 대연평도(大延坪島)는 경기만 북서쪽에 있는 면적 6.14 km2의 섬으로, 북방한계선과 불과 3.4 km 떨어져 있다. 연평도의 본섬으로, 대부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흔히 '연평도'라 하면 대연평도만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소연평도(小延坪島)는 연평도로부터 5km 남쪽에 있는 으로, 면적은 연평도의 6분의 1인 1.0236km2이다. 《세종실록 지리지》, 《대동여지도》 등에서는 산연평도(山延坪島)라고 쓰여 있다. 최고점은 해발 214m인 연화봉이다.[2]
  • 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제도(諸島)로 북쪽의 대연평도와 남쪽의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부속섬으로 당섬, 구지도가 있다. 정전 협정 당시 북한 측에 넘어간 황해도의 관할권에서 제외된 '서해 5도' 중 하나로서, 주민의 2/3 이상이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그 후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평도의 지명은 '연이어 뻗친(延) 땅(坪)'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황해도 해주군 송림면 관할의 도서 지역이었으며, 해방 직후 38선으로 인한 남북분단으로 1945년 경기도 옹진군으로 이관되었다. 송림면은 7개 리로 이루어져서, 면사무소는 본래 옹진반도 본토의 송현리에 있었고 연평도는 그에 속한 하나의 리였으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로 본토 및 소수압도, 대수압도, 육도(六島)가 북한 치하에 들게 되자, 면사무소를 연평도로 옮겨온 것이다. 이후 광역시 체제가 들어서면서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으며, 1999년 면 이름이 송림면에서 연평면으로 변경되었다. 북서쪽으로 38선과 인접하며 현재 북방한계선과 인접하므로 북한과 매우 가깝다. 실제로 연평도와 인천항 간의 뱃길은 122km나 되지만 북한 강령반도의 육세미까지의 거리는 12.7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육세미뿐만 아니라 38km 거리의 황해도 해주 땅까지도 육안으로 또렷이 보일 정도다. 따라서 북한이 옹진반도와 주변 섬에 설치한 해안포 사정거리에 들어가므로 유사 시 매우 위험한 지역이다. 다른 최전방 지역에 비해 꽤나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대연평도는 일산신도시, 북한산과 비슷한 위도에 있고, 소연평도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은평구,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 일대와 동위도이다. 소연평도의 최남단은 북위 37° 36′11″에 위치해 있다.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과 비슷한 위도이다.[3]

섬의 분류[편집]

  • 섬은 바다로 완전히 둘러싸인 땅이다. 섬은 대륙보다 작고 암초보다는 큰 것을 말한다. 특히 사람이 살 수 없거나 살지 않는 섬은 무인도라고 한다. 적당히 큰 섬은 도(島, island)라 하고 작은 섬은 서(嶼, islet)라 하여 이 둘을 통칭 도서(島嶼)라 한다.
  • 섬은 지각운동에 의하여 해저의 일부가 융기하거나, 해안산맥의 일부가 침수되어 높은 땅의 일부가 해면 위에 남아 있거나, 또는 육지의 일부가 침강하여 그곳에 해수가 들어와서 형성된다. 해저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화산도(火山島)나 해안 지역의 일부가 파도와 빙하의 침식을 받아 육지와 분리되어 만들어진 도 있다.
  • 바다에 있는 섬은 육도(陸島)와 양도(洋島)로 나누어진다. 육도는 지질적으로 대륙과 같은 구성 물질로 되었으며, 육지의 일부가 대륙이나 또는 대륙에 가까운 큰 섬에서 분리되어 형성된 섬이다. 양도는 육지와 관계없이 생성된 것으로서 화산섬과 산호섬이 여기에 속한다.

연평도의 역사[편집]

  • 곳곳에서 패총과 무문토기·빗살무늬토기 등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여겨진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해주군(벽성군) 송림면(松林面)에 속했다. 병자호란 때 임경업(林慶業)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던 중 선원들의 부식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나뭇가지를 꺾어 개펄에 꽂아두었더니 물이 빠진 뒤 가지마다 조기가 걸려 있어,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임경업을 기리는 사당 충민사(忠愍祠)가 존재해 있다.
  • 연평도는 조기잡이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외래문화의 도입은 1910년대에 천주교인 전응택(佺應澤,바오로)일가가 입도하여 교회(공소)를 설립하면서 비롯되었다. 연평도는 본래 해주군에 속했다가 1938년 해주읍이 시(당시는 府)로 승격되면서 해주시 주위의 종전의 해주군 지역을 벽성군(僻城郡)으로 개편할 때 벽성군에 편입되었으며, 8.15해방 후에는 38선 이남 지역이므로 경기도 옹진군(擁津郡)에 편입되었다.
  • 1945년 9월 2일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38선 남쪽인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되었으며, 이는 한국전쟁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수만 명의 피난민이 이 섬을 거쳐 남하하였다. 1995년 3월 1일 옹진군이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었고, 1999년 7월 20일에 행정구역명이 송림면에서 연평면으로 개칭되었다. 인천광역시 인천항으로부터 뱃길로 120km 떨어져 있는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령반도와는 불과 12km 떨어져 있다. 인천에서 뱃길로 145km 떨어진 연평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하며 북한의 부포리가 불과 10km 거리에 있는 서해 최대의 어항으로 통한다. 황해도 해주 수양산으로부터 일곱번째에 있는 이 섬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곳으로서,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친 형이라 하여, "연평도"라 한다. 또한 전초방위기지로써 1999년 연평해전 이후 일반에 널리 알려져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 연평도는 섬 전체가 안보체험장으로 연평포격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분단의 아픔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연평도 평화기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이와 같은 안보관광지를 걸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북쪽 둘레길 구간에서는 북녘 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연평도는 한국 제일의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파시가 열려 많은 인기를 누리던 곳으로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때 청나라를 치러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잠시 들렀다가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았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임경업 장군을 모시고 있는 사당 충민사에서 섬내 어민들이 오색만기를 내세우고 당굿과 배굿으로 북,징을 울리며 배 안전을 기원하는 풍어제(문화관광상품)를 매년 3월경에 지내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조기섬 동상을 만나볼 수 있고, 전망대와 더불어 조기 역사관을 개관하여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연평도 조개무지[편집]

  • 소연평도를 제외한 대연평도의 조개무지는 크게 배가 닿는 당도(堂島) 일대와 모이도(毛伊島), 연평부락 일대, 까치섬으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이 섬의 동남쪽 해안가를 따라 밀집 분포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 모이도 조개무지에서 채집된 유물은 빗금무늬(斜線文)와 횡주(橫走)생선뼈무늬·점무늬(點列文) 등이 시문된 토기와, 제작수법상 구석기적 전통을 보여주는 다량의 석영제 찍개(Chopping tool)·긁개(Scraper)·몸돌(Core)·격지(Flake) 등이 출토되었다.
  • 당도조개무지에서는 띠모양과 민무늬토기편들이 출토하고 있으며, 한편 고려 ·조선 시대의 자기편(瓷器片)들이 출토되는 조개무지도 있어 이 시대에도 연평도에 주민이 살았음을 입증해 준다. 기타 지구에서도 빗살무늬·횡주생선뼈무늬·빗금무늬·파상(波狀)점선무늬·민무늬 토기 등과, 찌르개·찍개·긁개 등의 석기가 나왔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들의 무늬가 빗살무늬토기 후기의 대표적 무늬인 횡주생선뼈무늬와 병행빗금무늬가 부위(部位)에 구별없이 전면에 동일하게 시문되어 있어 연평도 조개무지의 연대는 신석기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많은 조개무지들이 한 섬에 밀집 분포하고 있는 사실은 이곳이 북서풍을 피하기 좋거나 풍부한 어로 등의 자연적 조건이 사람이 살기에 좋았음을 보여준다.

연평도 광산[편집]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소연평도(小延坪島)에 있는 티타늄·자철 광산. 소연평도 광산이라고도 한다. 인천광역시 서해안에 위치한 소연평도에 있는 광산으로, 주로 티타늄과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다. 소연평도는 인근에 있는 대연평도의 부속 도서(島嶼)이며,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구성된 연평도는 북한과의 경계선에 가까운 서해5도 중 하나이자 한국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 소연평도는 면적 0.24㎢의 작은 섬으로 대연평도와는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중앙에 섬 최고봉인 봉화산(해발 214m)이 위치하는데, 이 산을 중심으로 소연평도 전체가 노천 광산(露天鑛山)의 형태로 티타늄 및 철광석으로 산을 이루고 있다.
  • 선캄브리아대 퇴적암이 오랜 기간 변성작용을 거쳐 관입한 접촉광상(接觸鑛床)으로, 철광상의 아래에는 석회암이 위치하고 그 아래에는 결정편암인 석류석이 존재한다. 본래 매장량은 약 100만t 가량으로, 20세기 초부터 간헐적으로 노천 채광(露天採鑛)되다가 1987년부터 대한광업진흥공사가 개발하기 시작하여 연간 15만t의 티타늄과 철을 채광하였다. 2008년 환경부에서 폐광산 주변지역 토양·수질오염실태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연평도 광산은 복원이 시급한 Ⅰ등급으로 측정된 바 있다.

소연평도[편집]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소연평리에 딸린 섬. 면적 0.236㎢로 연평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에서 남쪽으로 6.4km 떨어져 있으며 해안선 4.7km를 따라 얼굴바위 등 기암괴석과 충식석회암이 절경을 이룬다. 주변 바다에서 농어·민어·준치·우럭 등이 많이 잡히고 굴·소라 등 패류도 많아 2000년 말 현재 37세대 97여 명의 주민은 어업을 생업으로 한다.
  • 섬의 경작지에서는 감자·옥수수·고구마 등을 재배하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는 고구마는 맛이 좋다. 억새풀이 많이 자라 옛날에는 지붕이나 가축먹이·연료 등으로 사용했으며, 쇠의 대용으로 쓸 만큼 단단한 타이타늄이 난다. 타이타늄광이 있는 오석해안에는 마모된 타이타늄 자갈밭이 있어 찜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평도의 볼거리[편집]

  • 안보교육장 : 연평리에 위치한 안보교육장은 안보교육관, 피폭건물 보존구역으로 나눠 조성되어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은 총 3개의 전시실과 3D상영관, 방공호 체험실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1층은 포격피해 전시 및 추모실, 2층은 안보체험 및 교육실로 구성되어있다. 안보교육관 외부, 내부(2층)에서 관람이 가능한 피폭건물이 현장 보존되어 있어 연평도 포격 당시 참상을 관람할 수 있다.
  • 구리동 해수욕장 : 연평 북서쪽으로 위치한 천혜의 자연 해수욕장으로 북녘해안이 보이는데 위치한 은빛백사장으로 모래사장이 1km 길이에 200m 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암괴석, 흰 자갈, 모래가 나란히 펼쳐진 곳으로, 모래가 아주 부드럽고 해송이 어우러져 한여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 충민사 (향토유적 제1호) : 조선중기의 명장 임경업 장군의 사당으로, 장군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고 청나라를 치기 위해 명나라로 가던 중, 연평도에 들러 식수와 부식을 구하기 위해 가시나무를 무수히 꺾어다가 지금의 당섬 남쪽 "안목"에 꽂아놓고 간조 때 이름 모를 물고기를 무수히 포획하였는데, 이것이 조기잡이의 시초라고 하며, 해마다 봄이면 전 주민이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 관광전망대 (조기역사관) : 연평도 역사와 함께 하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며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2001년에 건립한 곳으로, 북녘 하늘로 지는 석양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1999년 6월 15일 발발한 서해교전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병풍바위 (오석해안) - 마치 병풍을 쳐놓은 것 같아 보인다 하여 병풍바위라 불린다. 주변에는 티타늄 광산이 있어 티타늄 조각이 마모되어 해안가에 둥근돌(오석)이 모이게 된, 일명 오석해안이 펼쳐져 있는데, 썰물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검은 돌들은 가히 수석 수집가들도 탐낼 만한 명물이다.
  • 얼굴바위 : 대연평도 남방 6.4km 거리의 소연평도의 동남 쪽에 위치한 바위로, 사람의 옆얼굴과 똑같이 생겼다 하여 "얼굴바위"라 부르며, 연평도의 대표적인 바위로 알려져 있다. 여객선을 타고 소연평도에 이르면 가장 먼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명소다.

지도[편집]

연평도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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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연평도(延坪島)〉, 《두산백과》
  2. 연평도〉, 《위키백과》
  3. 연평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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