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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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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저수지

임남저수지북한강원도 창도군 임남면 임남리에 있는 저수지이다.

개요[편집]

  • 임남저수지는 금강산수력발전소의 조업용 댐으로 계획되어 1986년 10월에 착공, 2003년 12월에 완공되었다. 길이 710m, 높이 121.5m에 평균 저수량은 18억㎥, 최대 저수량은 26억 2000만㎥이며, 유역면적은 2394㎢이다. 흙과 자갈을 쌓아 올려 축조한 사력댐으로, '금강산댐'이라고도 한다. 군사분계선 북방 10㎞ 지점의 북한강 상류에 위치하며, 남한의 평화의 댐으로부터 약 36㎞ 상류 지점에 있다. 북한의 인민경제발전 제3차 7개년 계획(1895~1991)의 일환인 금강산발전소(지금의 안변청년발전소) 건설 계획에 포함되어 1986년 10월에 착공되었으며, 이에 남한의 전두환 정부는 임남댐의 수공(水攻)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평화의 댐을 건설하였다.[1]
  • 임남저수지는 임남댐(任南 dam, 문화어: 임남언제, 任南堰堤)이라고도 한다. 북한강 상류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댐이다. 금강산댐이라고도 부르며, 2003년 말 완공되었다.[2] 임남저수지는 1987년 가배수 터널을 뚫고 1992년 12월 상류의 가물막이 공사를 완공한 뒤 1999년 1월 본댐 공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여 2000년 10월 높이 88m, 최대 저수량 9억 1000만㎥ 규모의 1단계 공사를 완공하였다. 하지만 1단계가 완공되기 전인 2000년 4월부터 댐에 물을 채운 데다가 공사를 지나치게 서두른 탓에 2002년 1월 댐 상층부의 균열과 훼손이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남한에서는 임남댐의 붕괴 위험이 제기되어 평화의댐을 증축(최대 저수량 26억 3000만㎥)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3년 12월 임남저수지는 본댐과 여수로(餘水路;설계 용량을 초과한 물을 방류하기 위하여 만든 수로) 공사를 완료하여 현재 규모를 갖추었다.
  • 임남저수지는 북한에 있는 높이 121.5m, 폭 710m의 중력댐이다. 북한강 상류를 막아 건설하였다. 평화의 댐에서 더 올라가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를 넘어가면 나온다. 대한민국에서는 금강산댐이라 부르지만, 임남댐을 혼용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임남댐이라 부른다. 1986년 봄 대동강 갑문공사에 동원되었던 북한군 병력 15만 명이 금강산 쪽으로 이동하였고, 4월 8일에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에서 최고인민회의가 금강산발전소 건설 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으며, 10월 21일에 착공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금강산댐은 17년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03년에 완공되었다. 그래도 평화의 댐이 없던 1980년대만 해도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팔당댐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고, 팔당댐이 방류를 한다고 해도 서울 잠수교가 잠기는 정도에 그쳤다.[3]

임남저수지의 건설[편집]

  • 임남저수지의 건설은 북한의 인민경제발전 제3차 7개년 계획(1985~1991)의 일환인 금강산발전소(지금의 안변청년발전소) 건설 계획에 포함되어 1986년 10월 21일부터 시작되었다. 1987년 가배수 터널을 뚫고 1992년 12월 상류의 가물막이 공사를 완공하였으나 북한의 경제난으로 잠시 중단되었다. 1999년 1월 본댐 공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여 2000년 10월 높이 88m, 최대 저수량 9억 1000만㎥ 규모의 1단계 공사를 완공하였다. 하지만 1단계가 완공되기 전인 2000년 4월부터 댐에 물을 채운 데다가 공사를 지나치게 서두른 탓에 2002년 1월 댐 상층부의 균열과 훼손이 발견되었다. 위성사진을 통해 임남댐이 큰 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착공한지 17년만인 2003년 12월 임남댐은 본댐과 여수로 공사를 완료하여 지금의 규모(높이 121.5m, 너비 710m)를 갖추었다.

임남저수지의 수로[편집]

  • 임남저수지의 수로는 남북 공유하천인 북한강의 수리권(水利權) 문제와 관련이 있다. 북한강의 상류 유역을 점하는 북한이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을 위하여 임남댐을 건설함으로써 하류 유역의 남한은 하천 관리와 용수 공급 등에서 일방적으로 권리를 침해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임남댐에 채워진 물은 인위적으로 유로가 변경되어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도수터널을 통하여 동해안의 안변청년발전소(발전용량 81만㎾)로 공급되는데, 이 때문에 임남댐이 건설된 뒤로 하류의 유량이 연간 약 17억㎥ 줄어들어 북한산 수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임남댐의 용수 차단으로 인하여 남한 지역의 화천댐과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 및 팔당댐 등의 수력 발전량이 감소하였으며, 하천유지용수 감소 및 유속 변화에 따른 수질 악화와 그로 인한 수계 주변의 생태계 변화 등을 초래하고 있다.
  • 1987년 2월 전두환 정부는 이 댐이 수공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임남댐 남쪽에 평화의 댐 1단계 건설을 시작했다. 2002년 9월에 평화의 댐 2단계 공사를 착공, 2005년 10월 완공했다. 2005년 예고 없이 대량의 물이 방류되어 한강 하류지역에서 피해를 입은 일이 있다. 임남댐 건설 이후 한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은 12퍼센트가 줄어들어 한강 하류에 있는 수도권 지역에 물 부족 현상과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에서 금강산댐의 물길을 터서 남북 상생 협력을 도모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창도군[편집]

  • 창도군(昌道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강원도의 동남부에 위치하는 군이다. 동경 127°35′∼128°02′, 북위 38°19′∼38°38′에 위치한다. 동쪽은 금강군, 서쪽은 김화군, 북쪽은 금강군·회양군, 남쪽은 금강군에 접하여 있다. 2000년까지는 남한의 양구군과 접하여 있었다. 태백산맥의 서쪽에 위치하고 북한강이 군내를 흐른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240m의 옥밭봉이다. 전체 면적의 약 80%가 산림이다. 창도군은 일제 강점기 까지는 김화군 금성 권역과 회양군에 속하여 있었고, 창도의 어원이 된 창도면 창도리 지역은 설치된지 2년만에 김화군으로 반환되어 김화군에 속한다. 1954년부터 2000년까지의 중심지였던 지역은 옛 통구면 지역이며, 현재의 군 중심지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에 회양군에 속했던 지역이 창도군에 편입된 것은 1987년에 회양군과 금강군에서 편입되면서이다.
  •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 때 김화군을 폐지하면서 김화군의 창도면·원북면·금성면·통구면, 임남면·근북면과 양구군 수입면의 일부가 분리, 통합되어 창도군이 신설되었다. 1954년 10월 김화군이 다시 생기면서 이전 창도읍과 서부지역이 김화군에 이관되고, 통구면의 현리·북둔리·화사리 일부로 이루어졌던 창도군 통구리가 군 소재지인 창도읍이 되었다. 1963년 12월 천리의 일부를 임남리로, 인패리 일부를 천리로 편입시켰으며, 1982년 10월 점방리를 철벽리로 고쳤다. 1987년에 회양군과 금강군에서 일부 리를 편입하였다. 금강산댐의 축조 후 창도읍(통구) 인근 지역이 수몰되었다. 그리하여 2000년 11월에 9개리가 금강군에, 2개리가 김화군에 편입되었다. 이 때 오천리 · 인패리 · 대정리 · 면천리 · 철벽리는 오천리로, 송거리 · 천리는 송거리로 통합되면서 금강군에 이관되었다. 도화리와 기성리는 창도군에 남은 리에 흡수되어 폐지되었다. 창도읍이 성도리와 당산리로 분리편입되었고 1987년에 회양군에서 편입한 지역인 신안리와 신동리가 창도읍이 되었다. 주요 산업은 농업, 양잠업, 축산업이다. 제재소 또한 발전해있으나 그 밖의 산업은 거의 발달해있지 못하다. 구리, 아연, 니켈, 납이 매장되어 있다.

화천댐[편집]

  • 화천댐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북한강에 위치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1944년 수력 발전 전용으로 완공되었다. 전력생산을 위주로 하는 발전용 댐으로서 한국수자원공사가 아닌 한국전력공사 기업집단에 속한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가 관할하고 있다. 한국 전쟁에서 기습의 초점이 되기도 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임남댐 방류로 인한 범람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였다. 2005년 상류 지역에 평화의 댐의 건설되기 전까지 화천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임남댐 붕괴나 방류로 인한 피해를 막아내는 1차 방어선이었다.

임남저수지의 특징[편집]

  • 임남저수지는 강은 없고 10억 톤 규모 저수지 및 고층에 댐을 만든 저수지라는 것이다. 최첨단 양수기 및 펌프를 사용하였다. 강을 만드는 프로젝트는 방대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경우로 높은 산 주변을 막고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하는 현대식 공법을 채택하였다. 이런 방식이라면 한반도 영토 어느 곳에도 임남 저수지 및 금강산댐을 만들 수가 있다. 원하는 지역에 가장 가까운 강을 활용하여 양수기 및 펌프로 물을 당겨와 사용한 것이 특징인 것이다. 쉽게 하류에 있는 큰 강줄기를 활용하여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등 한국 최고로 높은 산 정상 및 주변에 초대형 저수지 및 댐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러면 저수지는 주로 농사용 그리고 관광 어업용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저수지와 연결된 댐은 주로 강수량 조절 및 비상시 국방용으로 활용되어 침입하는 적을 물리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평화의 댐[편집]

  • 평화의 댐(平和의 dam)은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의 북한강에 위치한 댐이다. 2차 완공 후의 현재 길이는 601m, 높이는 125m이며 최대 저수량은 26억 3천만 t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금강산댐 건설에 따른 수공(水攻)과 홍수 예방을 위해 1987년 2월에 착공하여 1989년 1월에 1차 완공(당시 높이 80m)된 뒤, 2002년부터 2단계 증축 공사를 하여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되었다.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지 않는 건류댐으로 운영되고 있다. 댐 위로는 지방도 제460호선이 지나간다. 건설 과정에서 제5공화국 정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공 위협을 과장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정황이 이후 제13대 국가안전기획부장 장세동의 증언과 감사원 조사 등을 통해 밝혀졌다. 이 때문에 제6공화국 이후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평화의 댐의 저수량 26억 3천만 톤은 금강산댐의 저수량보다 1천만 톤이 더 많으며, 소양강 댐(29억 톤), 충주댐(27.5억 톤)에 이어 셋째로 많은 저수량을 가지며, 댐 높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임남댐(任南)〉, 《두산백과》
  2. 임남댐〉, 《위키백과》
  3. 금강산댐〉,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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