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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4일 (수) 01:08 기준 최신판
의림지(義林池)는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저수지이다. 대한민국의 명승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림지를 기준으로 서쪽 지역을 호서지방이라고 부른다. 호서지방은 충청도 지방을 가리키는데, 충청북도, 충청남도,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가 포함된다. '호서'란 호수의 서쪽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호수'가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개요[편집]
-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이다. 위의 두 저수지와는 달리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여전히 관개농업에 이용되고 있다. 삼한시대(원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말도 있고, 더 나중의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말도 있다. 제천시에서는 삼한시대 축조설을 밀고 있다. 제방은 시대에 걸쳐서 조금씩 높아졌다고 한다. 제방축조에는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과 같이 부엽토공법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요즘과 같은 토목 건설 장비도 없던 시절에 큰 제방을 만든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로 당시 제천 지역에 큰 권력자가 있었거나, 의림지 자체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설이었음을 의미한다. 제천(堤川)이라는 지역의 지명도 둑고을을 뜻하는 제주(堤州)라는 지명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제천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한국 지방을 구분할 때 기호 지방, 호남 지방, 호서 지방의 유래가 이곳에 의해 구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림지는 제천10경 가운데 당당한 제1경이다. 의림지역사박물관은 의림지가 제천을 대표하는 명소가 된 이유를 상세하고 흥미롭게 보여준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등과 함께 1000년 넘는 세월을 간직한 의림지는 최근까지 저수지 기능을 이어온다. 제천(堤川)이라는 지명에도 의림지를 빗대 '둑'의 의미가 있다.[1]
-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일대에 있는 삼한시대의 인공 저수지이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12월 4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20호로 제천의림지와 제림이 승격, 지정되었다. 둘레는 약 1.8km, 수면은 약 158,677m², 수심은 8~11미터이다. 호서 지방의 호(湖)가 이 의림지를 가리킨다. 김제의 벽골제·밀양의 수산제(守山堤)와 함께 삼한시대의 3대 수리시설로, 당시 농업 기술 발달의 정도를 보여준다.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역사가 오랜 저수지로, 세 곳의 저수지 중 현존하며 관개의 제기능을 수행하는 유일한 저수지이다. 삼국사기에 남아 있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의림지는 우륵이 축조했다는 설과 현감 박의림이 축조했다는 설도 있으나, 삼한시대의 저수지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세종 때와 세조 3년에 정인지가 둑방을 고치고, 1910년부터 5년간 다시 보수를 하였다. 1972년에는 홍수로 서쪽 둑방이 무너졌으나 고쳐 지었다. 1972년 둑방 붕괴 때의 조사에서 의림지 바닥에 큰 샘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2]
-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 하나인 저수지. 시도기념물. 한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로 손꼽힌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義臨堤)라고 표기하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尺)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結)이나 되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土沙)가 쌓여 작아진 것이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段)을 이루도록 하였다. 단면이 이중의 사다리꼴을 이루고 외면은 석재로 보강하였다.[3]
명칭 유래[편집]
- 의림지는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인공 저수지로 둘레는 약 1.8㎞, 수면적은 약 158,677m², 수심은 8~11m이다. 이곳은 구전에 의하면 용두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신라 진흥왕 때에 우륵이 축조했다는 설과 조선초기 현감인 박의림이 축조했다 설이 있으나 삼국시대의 기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저수지로 보는 것이 정설에 가깝다.
- 조선조 세종 때와 세조 3년에 정인지가 둑방을 고쳤으며, 1910년부터 5년간 다시 보수를 하였고, 1972년에는 홍수로 서쪽 둑방이 무너졌으나 고쳐 쌓았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한국 최고의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개정할 때 제천을 '의원현' 또는 '의천'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제천의 옛 이름인 '의'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되었다.
- 제림은 의림지 제방 위에 조성된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이다. 주종은 수백 년 묵은 노송이며 버드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농업용수가 넉넉지 못한 이 고장에서 방죽 아래쪽 청전동(靑田洞)의 농사는 전적으로 이 의림지 못물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주변에 영호정(暎湖亭)·경호루(鏡湖樓) 등의 정자와 연자암, 용바위, 홍류동, 홍류정지 등의 휴식처뿐 아니라 해빙기에 산란을 하러 모이는 빙어도 유명하여 제천지역의 대표적 명소로 알려져 있다.
지형특징[편집]
- 제천 시가지에서 불과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지역 주민들에게는, 특히 청전동 인근 주민들에게 조깅코스로 인기가 많다. 원래는 그냥 농업용 도로였는데 길도 좁고 차량이나 자전거가 심심치 않게 다니는지라 삼한의 초록길이라고 명명하곤 산책길을 넓히는 중이다. 가는 길에 솔방죽이라고 해서 주변에 갈대와 연꽃밭이 우거진 방죽도 볼 수 있다. 의림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세명대학교에서도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 의림지 한쪽에는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고, 인공폭포에서 조금 남쪽에는 높이가 10m 이상 되는 용추 폭포라는 실제 폭포도 있다. 다만 용추폭포는 저수지 물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을 때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항상 물이 흐르지는 않고 비가 오거나, 인공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에만 볼 수 있다. 용추폭포 위에는 유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철제 기둥에 설치된 센서를 지나면 불투명 유리가 투명 유리로 바뀌어 폭포가 내려다보인다. 발아래 쏟아지는 시원한 물을 지켜보며 걸을 수 있어 마치 폭포 위를 산책하는 듯한 아찔함과 폭포의 시원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 겨울철에는 빙어가 유명하며, 두께 8cm 이상 이상 얼어붙은 호수 위로 사람들이 썰매틀 타거나 빙어낚시 등을 즐긴다. 2011년 겨울에는 아예 시에서 공식적으로 겨울축제를 열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상영관이 설치되기도 한다.
- 북쪽에 저수지가 하나 더 있다. 시민들은 보통 본래의 저수지를 제1의림지, 이 저수지를 제2의림지로 부른다. 제2의림지라는 속칭으로 자주 불리는 이 저수지에 대해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명명한 정식명칭은 '비룡담저수지'이며, 공식 기록으로는 1968년에 착공하여 1970년에 완공되었다. 이 저수지를 지나면 용두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볼 수 있다.
- 출수구는 본래의 자리가 원토인 석비레층으로 그 위에 축조되었던 것이나 지금은 원형(原形)이 사태로 말미암아 없어지고 패어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제방은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쌓았다고 하고 그 뒤 약 700여 년 뒤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고 한다. 문헌에 기록된 바로는 세종 때 충청도관찰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수축하고 다시 1457년(세조 3) 체찰사가 된 정인지가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운동에 대비하여 군사를 모으면서 호서·영남·관동지방의 병사 1,500명을 동원해서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의림지는 호반 둘레가 약 2㎞, 호수면적은 15만 1,470㎡, 저수량은 661만 1,891㎥, 수심은 8∼13m이다. 현재의 몽리 면적은 약 300정보에 이른다. 수리관개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경승지로 이름이 있으며, 충청도 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호수의 분류[편집]
- 호수(湖水)는 못이나 늪보다 넓고 깊게 육지가 오목하게 패여 물이 괴어 있는 자연지형을 말한다. 대부분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 분포하며, 대개 염도가 낮은 민물이다. 댐이나 저수지를 만들면서 이루어진 인공호수도 많다. 호수는 생성 원인에 따라 자연호수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인공호수가 있다. 자연호수로는 석호(潟湖)가 있다. 과거에는 만(灣), 바다가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곳이었다가 퇴적 작용 때문에 바다와 연결이 끊겨 호수가 된 곳을 말한다. 인공호수는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를 말한다. 댐이나 방조제 등으로 물길을 막거나 가두어 만든다. 오래전에는 농업용수 조달을 위해 만들었지만, 오늘날에는 수력 발전과 홍수조절을 위해 만들기도 한다.
- 한국은 지각 운동 및 화산 활동이 적고 또한 대륙붕에 덮인 일이 없으므로 자연호수의 발달이 적다. 주요 자연호수로는 광포와 백두산 천지를 비롯하여 요교호, 소동정호, 천아포, 강동호, 화진포, 경포 등이 있다. 한국은 자연호수보다 인공호수가 더 넓은 내수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발전용 및 다목적댐으로 수풍호(345㎢), 장진호(54㎢), 부전호(22 ㎢), 황수원호(24㎢), 소양호(70㎢), 대청호(73㎢), 안동호(52㎢), 충주호(96㎢), 파로호 (38㎢), 갈담호(26.5㎢) 등이 있으며 관개용으로 건설된 고삼저수지, 남양호, 아산호 등이 있다.
의림지의 의의[편집]
- 1976년에는 충청북도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비와 제방만 남고 형체가 없는 벽골제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의림지도 새로 지정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청하여 2006년에는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농업생산기반시설로 관리하고 있다.
-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한국 고대 수리시설의 하나로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 등에 기록되어 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수리시설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의림지 제방 위의 소나무, 버드나무 숲인 제림(堤林)은 《제천현지도》와 《의림지도》 등 고지도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예로부터 의림지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어 오고 있다.
-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경관지로 주변의 영호정, 경호루 등 아름다운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 용바위, 홍류정지 등 전통적인 시설물들이 함께 어우러진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이다. 제천 의림지(堤川 義林池)는 고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용두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막아 가뭄과 침수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해 왔다. 농업이 경제의 중심이던 시대에 산간지역인 제천에서 제천평야의 대부분에 물을 공급하던 의림지의 위상은 제천의 옛 지명인 내토(奈吐:둑)와 충청·경기도를 일컫는 호서(湖西:호수의 서쪽)라는 별칭이 모두 의림지에서 유래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호수가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그만큼 의림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저수지이다. 충청북도 기념물인 의림지는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본래 임지라고 했다. 호반 둘레 1.8km, 만수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289.4 정보의 농지를 관개한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가운데 하나로, 수구를 옹기로 축조하여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의림지의 가치는 오랫동안 기능해 온 역사성 뿐 아니라 자연 입지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구조적 우수성과 관개면적이 담수면적의 13배에 이르는 관개효율성, 그리고 의림지를 중심으로 살아온 제천 사람들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의림지는 저수지로써 기능 외에도 제림(堤林)과 함께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예부터 문인들의 격조 높은 풍류 장소로 여겨지는 정자와 누각은 지금도 제천사람들의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하소천(下所川)[편집]
- 충청북도 제천시 신월동에서 시작하여 의림지 저수지를 통과한 후 남서쪽으로 흐르다 영천동 장평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으로 제천천의 제2지류이며, 장평천의 제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하소천 본류와 의림지천, 세월이천, 잣나무천, 동산말천, 질고개천, 안골천, 주축천의 7개의 소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연장은 6km, 유로연장 7km, 유역면적 12.84㎢이다.
- 하천 유역의 토지는 거의 대부분 임야와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하천의 우측은 4차선 도로가 인접하여 나란히 지나고, 좌측은 시가지 및 주거지와 인접하여 있다. 하천의 통과지점인 의림지는 지방기념물로, 3점의 문화재인 영호정·경호루·홍사구의 묘를 보유하고 있다. 도시를 통과하여 흐르는 하천이고, 하천의 토양은 모래와 자갈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호수〉, 《위키백과》
- 〈의림지〉, 《나무위키》
- 〈의림지〉, 《위키백과》
- 〈호수〉, 《네이버국어사전》
- 〈의림지(義林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이상진 기자, 〈제천시 의림지 역사박물관 국가귀속문화재 위임기관에 지정〉, 《대전일보》, 2023-03-05
- 이도근 기자, 〈'의림지 자동차극장' 차량 95대 내뿜는 매연 괜찮을까〉, 《뉴시스》, 2023-02-26
- 권정상 기자, 〈제천 의림지뜰 자연치유단지 내년 6월 착공〉, 《연합뉴스》, 2023-02-16
- 강대호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는 어디일까?〉, 《뉴스포스트》, 2021-11-12
- 한클랑, 〈충청도 당일치기 여행 : 제천 의림지〉, 《네이버블로그》, 2020-08-23
같이 보기[편집]